관동 조선인 대학살 100년… 묻혀진 진실을 찾다
"1923년 9월 1일/정오 2분 전, 그 순간/지구 일부분이 격렬하게 몸부림쳤다/간토 일대를 뒤흔든 대지진/이 재앙을 누가 예견했을 것인가"
일본 시인 쓰보이 시게지가 쓴 204행에 이르는 장시 '15엔 50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1948년 발표된 이 시는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증언이자 고발이었다.
"그 살벌했던 분위기 위에 살기를 더한 것은/거리마다 붙여져 있던 벽보였다/-폭도가 있어 방화 약탈을 범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당국에 협조해 이것을 진압하도록 힘쓰라/그것이 경찰 게시판에 붙여져 있었다/나는 이때 처음 확인했다/어디선가 시작되어 뿌려진 유언비어의 발화지가 어디였는지를"
시인은 조선인 학살이라는 집단 광기의 발화지가 일본 경찰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러면서 “나라를 빼앗기고/말을 빼앗기고/최후에 생명까지 빼앗긴 조선의 희생자여/나는 그 수를 셀 수가 없구나”라고 적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일본문학 전문가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시 ‘15엔 50전’을 번역해 자신의 새 책 ‘백년 동안의 증언’에 수록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쓰보이 시게지 외에 소설가 이기영,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시인 김동환, 시인 미야자와 겐지 등 작가들의 관동대학살 증언을 정리했다. 또 미우라 아야코의 마지막 소설 ‘총구’, 드라마 ‘파친코’ 등 이 사건을 다룬 작품들을 들여다본다. 조선인에게 사죄한 변호사 후세 다쓰지, 일본 책임을 물은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 내 사죄 움직임도 다뤘다
김 교수의 책 외에도 관동대학살을 조명한 새 책이 두 권 더 나왔다. 소설가 황모과의 신작 장편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SF 형식을 통해 관동대지진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와타나베 노부유키의 책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도 번역돼 나왔다.
다음달 1일은 관동대지진 발생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권이 있는 관동지방에서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에 화재가 겹쳐 약 10만명이 사망한 엄청난 재해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 학살 사건이기도 했다. 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일본인들이 9월 1일 밤부터 6일까지 6000여명의 조선인을 학살했다.
일본에서는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지정해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대거 학살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일본인들이 많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지만, 관동대학살에 대해서는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한·일 양국 시민들이 개최하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사를 보내는 것을 2017년부터 거부했다.
와타나베 기자는 2021년 일본에서 출간한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에서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는 그런 일(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는 생각이 의회와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회자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 간 역사 인식에서 큰 간극이 생긴 원인이 동학농민전쟁의 의병 진압, 간도와 사할린에서의 조선인 빨치산 토벌, 그리고 관동대지진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다 아는 일본의 조선인 학살 역사가 일본인들의 기억에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관동대학살에 대한 일본의 논리는 지난 2019년 발표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에 잘 드러나 있다.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램지어 교수는 혼란을 틈타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습격한다거나 우물에 독을 탄다는 얘기가 유언비어가 아니라 사실이었다고 강조한다. 또 중요한 것은 학살 여부가 아니라 조선인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범죄를 저질렀고 실제 자경단이 죽인 조선인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라면서 조선인 희생자 6000여명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와타나베 기자는 새 책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에서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서 근거로 제시한 당시 신문 기사들을 하나하나 재검토하면서 대부분이 오보였음을 밝힌다. 당시 도쿄와 연결되는 통신 시설은 모두 끊긴 상황이었고, 기자들은 피난민에게 들은 풍설이나 철도 통신망을 통해 얻은 정보, 군의 전문 등을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마구 호외로 발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경단 등에 의한 조선인 학살은 유언비어라는 가짜 뉴스가 원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와타나베 기자는 이어 일본인들이 황당한 유언비어를 왜 믿었을까, 그리고 서슴없이 조선인을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를 질문한다. 관동대지진의 학살은 대부분 경찰이 조직한 자경단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타나베는 자경단의 주축이 조선 등에서 전쟁을 수행했던 재향군인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귀환한 병사들의 전쟁 체험과 공포, 살인 경험 등이 학살을 가능케 하지 않았을까 추론한다.
황모과의 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도쿄로 돈 벌러 온 조선인 청년 노동자들이 경험한 관동대지진과 대학살을 묘사한다. 대지진 전날인 8월 31일 금요일 밤에서 이야기가 시작돼 9월 4일 화요일까지 이어진다. 100년 전 이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관찰하는 이는 현재의 한국인 민호와 일본인 다카야다. 두 청년은 과거의 현장을 관찰하기 위해 설계된 싱크놀로지 채널을 통해 관동대지진 속으로 파견된다.
황모과는 소설에 “3일, 경찰국장은 조선인 방화를 기정사실로 발표했다” “피난민들이 전국 구석구석에 전한 소문은 지역 신문의 호외로 만들어져 확산되었다” “재향군인회는 자경단에 상당수 지원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파르티잔을 잔혹하게 섬멸한 경험을 가진 경력자들이었다”라고 썼다. 김응교 교수나 와타나베 기자와 동일한 인식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황모과는 수년 전 처음으로 간토 학살 추도식에 참여하기 전까지 자신도 그 잔혹한 일을 거의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또 “추도회와 위령제를 찾아다니고 일본어로 된 증언 기록을 읽다 보면 조선인의 목소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면서 “증거가 지워지고 사실이 흐려진 공백을 메우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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