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美 상장, 어려운 줄만 알았는데...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8. 2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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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홀딩스는 직상장, 글람·엔케이맥스는 스팩

글람은 지난해 매출 200억원을 기록한 미디어파사드 전문 중소기업이다. 미디어파사드는 미디어(Media)와 건물의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를 합친 말이다. 영상을 건물 내·외부 벽을 스크린 삼아 투사하는 기술이다. 글람은 세계 최초로 투명 유리에 미디어를 재생하는 ‘G-글라스’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로와 전선 없이 유리와 유리 사이에 LED가 들어간 형태로 미디어 재생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글람의 기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와 관련해서도 주목받았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지난 7월 ‘디스커버 네옴 인 서울’ 전시회에 참여했다. 네옴은 글람이 세계 최대 규모 도하 투명 유리 미디어 글라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글람은 지난해 카타르 FIFA 월드컵을 위해 수도인 도하시 대형 종합병원 외벽에 투명 미디어 글라스를 설치한 바 있다.

최근 글람이 주목받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 소식을 알리면서다. 글람은 나스닥에 상장한 스팩사인 JGGC(Jaguar Global Growth Corporation)와 합병 계약을 맺었다. 증시에 상장된 스팩은 비상장 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다.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상장하면 기업공개 공모 절차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고 쉽다.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는 9월이면 나스닥에서 거래를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재규어글로벌그룹이 헤네시(Hen nessy)그룹과 공동 설립한 스팩사인 JGGC는 2억4400만달러(약 3263억원) 자금으로 지난해 3월부터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재규어그룹의 부동산 전문성과 헤네시그룹의 스팩 전문 경험이 합쳐서 만들어진 스팩이다.

글람 주식을 해외 주식과 교환하는 절차도 시작됐다. 글람 홈페이지에는 3800명 주주에게 새로운 계좌 개설을 요청하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 미국 스팩과 합병해 상장할 경우 투자자가 새롭게 받게 될 미국 주식을 입고할 계좌가 필요해서다. 국내 주식은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업무를 처리하지만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간 교환은 아직까지 사례가 없었다. 예탁결제원이 이 업무를 맡지 않으며 미국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갖춘 미래에셋이 담당하게 됐다.

글람은 이번 합병으로 해외 부동산 개발 전문 기업인 JGGC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북미 초대형 미디어(SLAM·Super Large Architecture Media)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나스닥 상장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 시장에서 미디어파사드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키우겠다는 계산이다.

지금까지 대기업 ADR 발행 대세

쿠팡 이어 한류홀딩스 직상장 성공

최근 미국 증시 입성을 노리는 중견·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간 미국 상장은 삼성전자나 포스코 등 대기업 전유물이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한국 기업 수는 총 10곳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으로는 포스코홀딩스(PKX)가 1994년 10월 상장했다. SK텔레콤과 KT, 한국전력공사, LG디스플레이,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등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이름을 올렸다.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한국 기업은 온라인 게임 업체 그라비티(GRVY)가 유일하다. 과거 약 10곳 정도 한국 기업이 나스닥거래소에 상장했다 상장폐지됐다.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로 이름을 알린 그라비티는 2005년 2월 상장했다.

포스코홀딩스와 그라비티 등은 미국 예탁증권(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 형식으로 상장했다. ADR은 미국 현지 은행이 외국 기업으로부터 예탁받은 증권을 담보로 발행한 주식이다. 쉽게 말해 한국 기업인 경우 한국에서 발행한 주식을 미국 은행이 담보로 삼아 발행해 뉴욕 증시에 상장한 것이 ADR이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ADR 주식과 IPO를 통해 상장한 주식은 기업가치를 반영한 주가 평가나 주식 거래 방식, 수익률 계산 방법 등의 측면에서 실질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다.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그라비티 주식도 ADR 형태다. 그라비티는 나스닥거래소 2부 리그 격인 나스닥 글로벌 마켓에 상장해 있다.

IPO를 통해 상장한 기업은 ‘한국판 아마존’ 쿠팡(CPNG·2021년 3월 상장)이 처음이다. 이후 스타트업 최초 직상장 사례도 나왔다. 한류홀딩스(Hanryu Holdings Inc·HRYU)다. 한류 팬덤 플랫폼을 운영하는 한류홀딩스는 지난 7월 31일 상장 절차를 끝내고 8월 1일(현지 시간)부터 거래 중이다. 한류홀딩스 경쟁력은 글로벌 팬덤 플랫폼 ‘팬투(FANTOO)’다. 세계 150개국에서 서비스하는 팬투는 실시간 번역 기능을 갖춰 국가와 언어 장벽이 없이 유저 간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환경을 구현했다. 글로벌 한류 팬 2500만명을 이용자로 확보한 팬투는 해외 이용자 비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8월 1일 상장 첫날 7달러80센트를 기록한 주가는 8월 15일 기준 5달러17센트로 거래를 마쳤다. 한류홀딩스는 나스닥 직상장을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 한류 문화를 전파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미국 증시 입성을 노리는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 직상장보다는 스팩과의 합병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사진은 미국 월가. (UPI)
스팩 합병 통한 상장 기회

국내 저평가 바이오 미국 노려

최근 스타트업들이 한류홀딩스처럼 직상장보다 스팩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세포 치료제 개발 기업 엔케이맥스는 미국 자회사 엔케이젠바이오텍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상장 승인을 받았다고 지난 8월 16일 밝혔다. 엔케이젠바이오텍은 엔케이맥스의 세포 치료제 ‘슈퍼NK(SNK)’ 시리즈의 미국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자회사다. 지난 3월 NYSE 상장을 위해 스팩사인 그라프(Graf Acquisition)와 인수의향서를 체결했다. 양 사는 합병 승인을 위해 8월 30일 뉴욕에서 특별 주주총회를 연다. 그라프는 주주들에게 합병에 관한 위임장과 안내서를 우편으로 송부하기 시작했다고 엔케이맥스는 설명했다. 합병 이후 그라프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나스닥으로 상장을 이전하고 엔케이젠바이오텍으로 사명을 바꿀 계획이다. 엔케이젠바이오텍 측은 “나스닥 상장은 나스닥에 상장된 많은 혁신적 생명과학 기업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K컬처를 주도하는 엔터사도 상장 대열에 가세했다.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와 ‘승리호’ ‘추격자’ 등을 제작한 콘텐츠 제작사와 엔터테인먼트 기업 7곳이 스팩 합병을 통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다. 기업가치는 78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국내 콘텐츠 기업 7곳을 자회사로 둔 지주사 케이엔터홀딩스는 미국 나스닥 상장 스팩사인 글로벌스타와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스타는 북유럽·아시아 지역 기업과 합병에 초점을 맞춰 설립된 스팩사다. SEC 심사를 마치고 올해 12월 거래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 합병 과정에서 기업가치는 6억1000만달러(약 8158억원)로 평가됐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케이엔터는 케이웨이브미디어로 이름을 바꿔 나스닥에서 거래된다.

케이엔터홀딩스를 이끄는 최평호 회장은 CJ CGV 설립 멤버로, CJ ENM 영화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케이엔터홀딩스에 합류하는 7개 기업 중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로 이름을 알린 ‘더램프’가 대표적이다. 영화 ‘승리호’와 ‘추격자’ ‘작전’ ‘늑대소년’을 제작한 영화사 ‘비단길’, ‘내가 살인범이다’와 ‘카터’ ‘악녀’ 등으로 이름을 알린 콘텐츠 기업 ‘앞에있다’도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엔터홀딩스는 제작 역량을 통합해 원천 IP 가치를 극대화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할 예정이다. 미국행을 결정한 이유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IP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국내 제작사들이 보유한 우수한 오리지널 IP에 해외 투자자 자금력을 직접 연결하면 토종 콘텐츠 기업들이 재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계 미국 나스닥 상장 스팩도

바이오·ESG 아시아 기업 합병 예정

지난해 아시아 기업을 인수합병 대상으로 하는 스팩 기업이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다. ‘밸류언스머저I(Valuence Merger Corp I·VMCAU)’은 크레디언파트너스 창업자인 우성윤 대표가 설립했다. 인수합병 대상 기업은 아시아에 있는 바이오, ESG 관련 기업이다. 밸류언스머저는 지난해 3월 나스닥에서 각 10달러에 2000만개 유닛을 상장해 2억달러를 조달했다. 각 유닛은 회사의 클래스A 보통주 한 주와 반 개의 워런트에 상응한다. 상장 첫날 거래 시초가 10달러에 시작돼 변동성이 크지 않은 박스권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밸류언스머저는 한국계 경영진과 합병 대상 기업을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성장 기업으로 한정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증시에 자리 잡은 300여개의 아시아 기업 중 대부분이 중국계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기업을 목표로 한 합병 전략이 통한 셈이다.

밸류언스머저의 최대주주는 유한책임회사인 밸류언스캐피탈이다. 밸류언스캐피탈의 주요 출자자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크레디언파트너스와 크리스탈바이오사이언스다. 크리스탈바이오사이언스는 조중명 대표가 2000년 설립한 국내 바이오 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의 금융 자회사다. 밸류언스머저는 21개월의 존속 기간을 앞두고 곧 합병 대상 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아시아의 바이오·ESG 기업 합병을 목표로 삼은 한국계 스팩도 나스닥에 상장됐다. 사진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UPI)
로제타텍, 캐나다 상장 추진

북미 재난 방재 시장 공략

재난방지인공지능플랫폼(DAP) 전문 기업 로제타텍은 캐나다 증시를 노린다.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블루애플자산운용과 협약을 맺고 캐나다 토론토벤처증권거래소(TSXV) 상장을 추진한다. 블루애플자산운용은 유망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고, 캐나다 증시나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켜 기업의 해외 자금 유치와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캐나다 현지 한국계 자산운용사다. 이 회사는 LCM에너지솔루션을 캐나다 증권 시장 TSXV에 CPC(Capital Pool Company)와 스팩 방식으로 상장을 신청해 최종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로제타텍은 캐나다 TSXV 상장을 위해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에 현지법인 로제인공지능(AI)을 설립했다. 이어 지난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로제PDI도 설립해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양 사는 북미 기관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사전 로드쇼 방식을 통해 투자자 모집에 나선다. 캐나다 TSXV 상장을 마치면 향후 미국 나스닥 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에 진출한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조영진 로제타텍 대표는 “재난 대응 기술과 장치들은 대부분 사후 대응 중심이었지만 앞으로 재난 사전 예방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로제타텍은 디지털트윈, 빅데이터, AI 등 기술 개발을 통해 재난 사전 예방 기술을 갖춘 만큼 글로벌 기업과 충분히 견줘볼 만하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3호 (2023.08.23~2023.08.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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