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심해지는 정신질환… “문제는 병이 아니라 치료”

김남중 2023. 8. 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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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마음이 아픈 사람들
토머스 인셀 지음, 진영인 옮김
책읽는수요일, 404쪽, 1만9800원
게티이미지뱅크


이 책은 2015년까지 13년간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2019년 게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특별 고문으로 정신 건강 관리 시스템 개혁을 도왔던 정신과 의사 토머스 인셀의 ‘미국 정신 의료 개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를 위한 나의 바람은, 결국 내가 현장에서 45년 넘게 보면서 품게 된 생각인데, 정신 의료를 회복 및 예방까지 포함해 재정의하자는 것이다.”

책은 정신 질환의 현황과 특징, 치료 및 환자 관리 실태 등을 짚어가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동안 외면해온 정신 질환을 의학적, 사회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읽고 나면 우리가 정신 질환을 크게 오해하고 있었고 막연히 두려워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정신 질환은 특수한 병이고, 그 원인과 메커니즘을 알기 어려우며, 치료 또한 극히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정신 질환자들의 주요 경로인 격리나 방치, 죽음 등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정신 질환은 널리 퍼져 있다.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 성인 20명 가운데 약 1명이 중증 정신 질환의 기준을 충족한다. 미국인 성인 6명 가운데 1명이 정신과 약을 먹는다.

정신 질환은 총기 테러나 범죄의 동기를 알 수 없는 ‘묻지마 살인’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정신 질환이 살인이 아니라 자살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자살 원인은 적어도 3분의 2가, 때로는 90%가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이나 여타 정신 질환이다.

정신 질환은 치료가 안 되는 병이 아니다. 약물 치료, 심리 치료, 신경 치료, 재활 치료 등을 결합하며 효과적인 치료를 받으면 증세가 완화되고,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 책은 치료가 효과를 발휘한 다수의 사례와 연구를 소개하며 “우리에게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고, 기술과 과학 발달로 치료법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왜 정신 건강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을까. 저자는 문제는 정신 질환이라는 병이 아니라 치료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신 건강의 위기를 ‘치료의 위기’로 규정한다. 현재의 정신 질환 치료는 증상자들이 치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또 의료 시스템이 정확하고 통합적인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기다.

치료를 받아야 되고,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치료를 안 받고 있다. 중증 질환자도 응급 상황을 제외하면 치료에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다. 여기에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 태도, 치료에 대한 접근성 부족, 환자가 스스로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는 특성 등이 작용한다.

치료에 참여하는 경우라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는 어렵다. 응급실에서는 처방전을 주고 돌려보내고, 입원 치료가 필요해도 병상을 찾기 어렵다. 치료는 대개 일회성에 그친다. “약물 요법과 심리 치료와 기계와 재활 서비스를 결합할 수 있는 의료 제공자는 거의 없다.”

저자에 따르면, 치료받는 정신 질환자의 비율은 40% 정도, 이 가운데 과학적 증거 중심의 치료를 받는 환자는 다시 40%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치료 과정에 들어가는 환자가 전체의 16%인데 이들 중 3분의 1에게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면 증상 해결에 도달하는 환자는 5%를 조금 넘는 셈이다.

방치된 정신 질환자는 나중에 수감되거나 노숙인이 되거나 자살하는 경로를 밟는다. 이들의 기대 수명은 미국인 평균보다 20년이나 짧다. 미국 노숙자 중 25%가 중증 정신 질환을 겪고 있다. 미국 교도소와 구치소에는 중증 정신 질환을 앓는 수감자가 35만명 있다. “지난 30년 동안 구치소와 교도소가 사실상 정신병원을 대체했다”는 말이 나온다.

저자는 정신 질환자들을 치료에 참여하게 하고, 정확하고 통합적인 치료를 제공하면 상당수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 질환에서 문제는 병의 난치성이나 약물·치료법의 부재가 아니다. 치료 자체를 안 하고 있는다는 게 문제다. 저자는 정신 질환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라며 이들을 사회가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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