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일인자는 모르겠다, 대신 커제는 무조건 넘어서겠다"
응씨배 우승 신진서 9단 인터뷰
Q : 다른 대회와 어떤 점이 달랐나
A : 응씨배가 4년마다 열리는 대회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화제가 됐던 것 같다. 이번 응씨배는 마음의 짐이었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으니까. 그걸 해결해서 더 뿌듯했다(※제9회 응씨배는 코로나 사태로 일정이 거듭 연기됐다. 애초 2020년 가을 끝날 예정이었던 대회가 이제야 마무리됐다. 준결승전도 2021년 1월 끝났었다. 신진서 9단은 결승에 진출한 지 2년 7개월 만에 결승전을 치렀다).
Q : 결승 상대 셰커 9단은 어땠나
A : 아무래도 컨디션이 떨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세계 초일류 기사다. 상대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바둑을 두느냐가 더 중요했다.
Q : 결승전을 복기하면 평소보다 공격을 약하게 한 것 같던데
A : 셰커가 수읽기가 강한 선수여서 조금은 의도적으로 급박한 전투를 피했다. 유리한 전투였으면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신이 없었다. 상대보다 내가 세계 대회 경험이 많기 때문에 경험에서 차이가 나지 않았나 싶다.
Q : 우승 직후 “긴장해서 잠을 못 잤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긴장했었나?
A : 심리적으로 힘든 건 아니었다. 6월 란커배 결승에서 구쯔하오 9단에 지고 난 뒤 ‘부끄럽지만 말자’고 다짐했었지만, 부담감을 다 지울 순 없었다. 응씨배를 앞두고는 지면 안 된다는 생각만 했다. 대회 하루 전까지도 긴장을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잠이 안 왔다. 집에선 누우면 바로 잤는데, 계속 뒤척이고 잠들지 못했다.
Q : 란커배 패배가 그렇게 아팠나
A : 세계 대회 결승은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란커배에선 구쯔하오가 나보다 마음가짐이 더 독해서 내가 졌다고 생각한다. 응씨배도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번엔 마음을 잘 정돈한 것 같다.
Q : 이제 신진서 시대는 개막했는가
A : 글쎄다. 최근 몇 년만 보면 일인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도 많았다. 조금 더 잘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우승해야 하니까 지금 일인자라고 부르기보다는 내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나중에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은 계속 발전하는 단계다.
Q : 응씨배 우승으로 메이저 대회 5회 우승을 달성했다. 중국 일인자 커제 9단은 메이저 대회에서 8회 우승했다. 커제를 넘고 싶다고 밝힌 적 있었는데,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A : 커제는 무조건 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한국 바둑을 위해서도 커제는 어떻게 해서든 넘어야 한다. 지금은 커제를 이기는 것보다 중국 바둑을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 중국 바둑이 점점 강해지는 걸 느낀다. 양딩신·구쯔하오는 원래 강했고, 리쉬안하오도 둘 때마다 갑갑했던 느낌이 많았다. 리웨이칭·딩하오 같은 동갑 기사들도 세계 대회에서 더 자주 만날 것 같다. 신예 왕싱하오도 그렇고. 지금 중국 바둑은 한 명이 엄청나게 위협적이라기보다 누굴 만나도 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강점을 더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Q : 신진서가 생각하는 신진서의 강점은 무엇인가
A : 예전에는 인공지능(AI)을 잘 활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사들이 너무 많아져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수읽기와 후반전은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사들이 대체로 후반에 강하다.
Q : 앞으로 계획은
A : 당연히 아시안게임 우승이다. 남자 개인전 첫 금메달도 중요하겠지만, 단체전도 중요하다. 11월에 열리는 삼성화재배도 우승하고 싶다. 삼성화재배도 우승하면 최초로 연간 상금이 15억원이 넘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삼성화재배 2연패 자체가 더 욕심이 난다. 여기서 들어보니 다음 응씨배가 일정을 앞당겨 열릴 것이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응씨배를 두 번 우승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대회가 열린다니 욕심이 생긴다.
신진서 9단은 중국에서도 인기 기사다. 대회가 열리면 바둑 팬이 몰려와 사인을 받아간다. 응씨배는 통제가 심해서 덜했는데, 최근 중국에서 열린 란커배와 몽백합배에선 100명도 넘는 팬에게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 한국에는 없는 풍경이 부럽지 않으냐 물었더니 20대 초반 청년답지 않은 대답을 내놨다.
“제가 더 많이 이기고 우승해야지요. 그래야 팬이 더 생기고 바둑이 더 인기가 많아지겠지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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