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처리수' 아닌 "오염수"…30년 한·일 '장기 현안’ 시작됐다
“오늘 오후 일본 측이 과학적으로 처리된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대국민 담화문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일본식 표현인 ‘처리수’ 대신 오염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과학적으로 처리된”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였다. 이날 오후 1시부터 방류가 시작된 후쿠시마 오염수가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를 통해 방사성 물질이 정화된 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방류 첫날인 이날 일본은 약 460t의 오염수를 후쿠시마 앞바다에 내보냈다.
'과학'과 '여론' 사이 고심하는 정부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과학적으로 처리된 오염수’라는 표현엔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지난 5월 한국인 전문가 시찰단의 점검 결과 및 지난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여전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여론이 상당하고, 시민단체와 야당의 반발도 거세다. 검증 결과를 존중하면서도 국내 여론을 신경 써야 했던 정부는 그간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은 과학적·기술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오염수 방류를 찬성·지지하진 않는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후쿠시마 원전에선 냉각수·빗물·지하수 등이 뒤섞인 방사능 오염수가 매일 160t 가량 발생한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 이후 지난 12년간 쌓인 오염수는 총 132만톤. 일본은 이를 약 30년에 걸쳐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할 예정이다. ALPS를 통해 세슘 등 62종의 방사성 물질을 정화하고, ALPS가 거르지 못하는 삼중수소·탄소14등의 핵종 농도를 줄이기 위해 바닷물과 희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다층적 모니터링 체계 구축…"철저 대비"
한 총리는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의 문제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철저하게 대비하겠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일본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철저하게 과학적 기준을 지키고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류되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약 4~5년 후에 한반도 인근 해역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지만 당장은 우리 해양 생태계와 국민 건강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일본의 방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정부 설명과 이를 믿기 어렵다는 야당·시민단체의 주장은 당분간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 오염수 문제가 한·일 관계의 장기 현안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30년간 이어질 방류, 한·일 장기 현안 되나
오염수 방류 초기 구축한 다층적 모니터링 체계를 향후 3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소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로 인해 정부는 총 1만950회에 걸쳐 일본이 작성하는 오염수 방류 서면자료를 검토해야 하고, 약 1500회의 화상 회의와 780회의 현장 방문을 수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핵심 설비인 ALPS 고장 등의 이유로 목표치까지 정화되지 않은 오염수가 방류되는 사례가 발견될 경우 이는 곧장 일본에 대한 불신과 한·일 갈등 요소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오염수 방류의 과학적·기술적 안전성이 담보되고 이를 통해 오염수 방류가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지 점검할 수 있는 다층적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집행해야 한다”며 “나아가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는 것 이상으로 방류 과정과 그 결과 공유가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한·일 간 지속적인 협의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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