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띄우기' 꼼수?…계약 후 4개월 지났는데 미등기 900건
아파트 매매 계약 후 4개월(120일)이 지났는데도 등기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올해 서울에서만 902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올해(8월 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2만2489건을 조사한 결과다.
일반적인 계약 관행상 계약 후 4개월 이상 등기가 미뤄질 경우 ‘집값 띄우기’ 등 이상 거래로 의심해볼 수 있다. 정부는 ‘집값 띄우기’를 통한 부동산 시세 조작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 때 등기 여부(1월 1일 계약 건부터 공개)를 공개하고 있다.
계약취소건(694건)을 제외한 전체 2만1795건의 42.0%(9158건)가 미등기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등기가 완료된 계약은 1만2637건(58.0%)인데, 계약부터 등기까지 평균 2개월(61일)이 소요됐다.
실거래가는 부동산 계약일 이후 30일 이내에 신고하게 돼 있어 소유권등기 이전을 하지 않고 계약서만 쓴 상태에서 올릴 수 있다. 이를 악용해 특정 아파트를 최고가에 허위 거래하고, 인근 단지나 같은 단지에서 최고가에 맞춰 상승 거래가 이뤄지면 기존 거래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호가를 띄우는 행위가 나타났다. 집값을 띄운 뒤 집을 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 식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등기 일자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아파트 거래에서는 계약 후 2개월 이내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진행한다. 부동산 소유권이전 등기는 잔금을 치른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하게 돼 있다. 이를 고려할 때 계약 후 4개월이 넘도록 등기가 안 된 계약은 이상 거래로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거래 가운데 4개월이 넘도록 미등기 상태인 계약은 902건으로 조사됐다. 1월 1일부터 4월 25일까지의 거래인데, 이 기간 거래 신고된 9517건 가운데 미등기 계약은 약 9.5%를 차지한다. 올해 거래신고 건 가운데 6개월 이상 미등기 상태인 계약도 238건이나 됐다. 또한 4개월 이상 경과 미등기 계약의 27.7%(250건)는 직전 계약보다 가격이 오른 상승 거래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의도적인 ‘집값 띄우기’라고 의심해볼 수 있는 사례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선 용산구(17.7%), 관악구(13.3%), 금천구(13.1%), 영등포구(12.4%) 등에서 4개월 이상 경과 미등기 계약 비중이 높았다. 특정단지에서 4개월 이상 경과 미등기 계약이 30%가 넘는 사례도 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 남서울힐스테이트의 경우 30.8%(13건 중 4건)가 계약 신고 후 4개월 넘게 지났지만, 미등기 상태다.
중랑구 면목동의 사가정센트럴아이파크의 장기 미등기 비율도 30.4%(23건 중 7건)에 달한다. 30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의 장기 미등기 사례도 25건이나 됐다.
계약 후 돌연 거래를 취소하는 사례도 여전했다. 올해 서울 아파트에서 거래 신고 후 취소한 계약은 694건이었다. 4개월 이상 경과 후 거래 취소 건도 23건으로 나타났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매수인과 매도인의 자금 사정 등으로 잔금 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잡는 사례가 드물지만 존재한다”면서도 “특정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장기 미등기 계약 건이 나올 경우에는 충분히 이상 거래로 의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아파트 미등기 현황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6월까지 매매 후 미등기 건수는 총 1만392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거래(145만1566건)의 약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아파트를 매매하고 60일 이내 등기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례가 206건(허위신고 8건, 계약해제 미신고 173건, 등기신고 지연 25건), 세무서 통보와 소송 진행 등 ‘과태료 외 조치’가 60건 발생했다.
국토부는 지난 10일 기획조사 통해 ‘집값 띄우기’ 위법 의심 행위 541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실제 실거래가를 허위 신고하는 수법을 써 시세 차익을 얻는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최근 “집값 작전 세력을 근절하지 않으면 가격 정보가 왜곡돼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고, 국민은 속을 수밖에 없다”며 “반시장적 수단으로 시장을 파괴하는 행위는 반드시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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