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죄인이 아닙니다”···망리단길 중심에서 당당함을 외치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촉구 위한 서명 운동 동참 호소
서울 도심 힙플레이스로 꼽히는 마포구 망리단길 카페거리에 이색 전시회가 열렸다. 키워드는 ‘당당함’, 전시회 제목도 ‘스탠드 펌(STAND FIRM): 당당함을 향하여’다. 24일 찾아간 팝업스토어 엑스프레스(XXPRESS)엔 인간의 뇌 구조와 발바닥을 모티브로 한 설치미술, 허들을 넘어 도약하는 모습이 담긴 페인팅 등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작품들이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사회의 편견과 낙인을 마주한 수용자 자녀의 목소리’다. 그 안에는 두려움, 상처, 위로, 보듬음이 내재돼 있다.
곰인형과 아기자기한 장난감들이 담긴 상자가 창문 하나 없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싼 방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작품의 제목은 ‘보물함’(김민규·17)이다. 차갑게 느껴지는 무채색의 콘크리트는 수용자 자녀들에게 놓인 우리 사회의 편견어린 시선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자리잡은 소중한 보물함을 잃지 말자는 작가의 외침이 수용자 자녀들을 향한다. 균열이 생겨 한쪽 면이 부서져내린 콘크리트 벽이 되려 희망으로 느껴진다. 벽 바깥에서 그 보물함을 함께 바라봐 줄 누군가의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메시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수용자 자녀 지원 활동을 펼쳐온 아동복지단체 세움(대표 이경림)이 지난 6년여간 수용자 자녀 인식개선 프로젝트를 함께 펼쳐 온 예술교육 전문기관 ‘1-5디자인랩’(대표 나웅주)과 힘을 모은 자리다.
이규희 세움 간사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2019년 대한민국 정부에 수용자 자녀의 권리 보장을 권고한 이후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국가보고서를 제출하는 내년 12월을 제도개선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람객들에게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수용자 자녀를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알리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참여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엔 부모와 자녀를 동일시하는 ‘정서적 연좌제’가 깊이 깔려 있다. 수용자 자녀는 부모의 죄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 정상적인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의 수감 사실을 알고 있는 자녀가 10명 중 3명뿐(2022 수용자 자녀 지원에 대한 인식조사,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인 이유다.
작품이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는 참여 작가 다수가 자기 또래의 수용자 자녀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변화를 촉구해 온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재능기부로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 32명은 모두 아티스트를 꿈꾸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수용자 자녀 당사자가 쓴 책 ‘어둠 속에서 살아남다’(세움)를 읽고 자신만의 시각 이미지로 재해석해 작품에 표현해냈다.
서하민(25)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 한 번도 수용자 자녀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사회적 메시지와 선한 영향력을 담아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전시회를 찾은 수용자 자녀 이유진(가명)양은 “관심의 울타리 밖에 있는 목소리를 또래 작가들이 작품으로 꺼내어 보여줘서 고맙다.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경림 대표는 “차갑기만 한 사회의 시선을 걷어내고 따뜻하게 안아줘야 할 이들이 수용자 자녀”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 안에서조차 ‘왜 가해자 자녀를 돕냐’는 편견이 있을 만큼 수용자 자녀 지원 활동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죄 없는 아이들에게 꼬리표를 붙여선 안된다”며 “가장 작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돕는 게 크리스천으로서의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전시회에서는 수용자 자녀가 세상의 중심에 당당하게 서기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거울, 엽서, 티셔츠 등의 후원 굿즈를 선보인다. 전시를 통해 모인 후원금은 위기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데 활용될 예정이다. 또 QR코드를 통해 수용자 자녀가 세상에 당당히 서도록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전시회의 뜻에 공감하는 인권 활동가들의 참여도 이어진다. 24일에는 제주도에서 베리어프리(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장벽을 제거하는 활동) 문화공간 ‘삼달다방’을 운영하는 이상엽 작가, 25일에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운동을 펼쳐 온 권준호 일상의실천 대표의 북토크가 열린다. 전시회는 다음 달 2일까지 진행된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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