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이름 그가 지었다…프리고진과 추락사한 '히틀러 덕후'

김선미 2023. 8. 2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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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바그너 그룹의 군사 작전을 총 지휘한 드미트리 우트킨(53)을 조명했다. 사진 가디언 캡처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전용기가 추락할 때 함께 있던 이들 중 주목할 만한 인물이 있다. 바그너의 총지휘관 드미트리 우트킨(53)이다.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으로 바그너의 모든 군사 작전을 총괄했던 그는, 바그너라는 그룹명을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뛰어난 전술로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총애를 입었지만, 지난 6월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땐 그의 편에 서서 함께 반기를 들었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우트킨은 바그너 그룹에서 프리고진 만큼 중요한 존재"라고 소개했고, 영국 가디언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전장을 늘 그리워했던 군인"이라고 묘사했다.

우트킨은 2014년 프리고진과 함께 바그너 그룹을 세운 공동 설립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력가였던 프리고진이 자금을 대 조직을 창설했고, 우트킨은 군사 작전만 주도했다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우트킨은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장교 출신으로, 러시아-체첸 전쟁 등 굵직한 전쟁에 수차례 참전했다. NYT는 "우트킨의 역할은 야전사령관에 더 가까웠다고 분석하는 자료가 많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재력가인 프리고진이 자금을 대 바그너 그룹을 창설하고, 우트킨이 야전 사령관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그룹 내 영향력은 프리고진에 뒤지지 않았다. 바그너라는 그룹 이름을 지은 것도 그다. 나치의 사상과 문화에 빠졌던 그는,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였던 리하르트 바그너에 매료됐다. 군에 있을 시절에도 호출 부호로 바그너란 단어를 사용했고, 이후 용병 그룹의 이름도 바그너로 하자고 제안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몸에 수많은 나치 문양의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바그너 구성원들과 지지자들은 종종 그룹을 '오케스트라'로, 전투 인력을 '뮤지션'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바그너 그룹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로 점령했을 때다. 이후 2015년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지원하며 내전에 개입하거나, 2018년 리비아 내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외에 수단·모잠비크·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의 내전에도 투입돼 친러 성향의 정권들을 비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반란 전까진 바그너와의 공식적인 관계를 부인했다. 하지만 2016년 우트킨에게 전쟁에서의 공을 치하하며 군사 훈장을 수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반란 전까진 바그너에 대해 "유전 탐사 등을 하는 회사로 안다"며 공식적인 관계를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우트킨에게 러시아가 참가한 각종 전쟁에서의 성과를 치하하며 군사 훈장을 수여했다. 미국·영국·유럽연합(EU)·캐나다 등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여한 점을 들어 우트킨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지난 6월 프리고진이 푸틴 대통령과 선을 긋고 무장 반란을 결심했을 당시, 우트킨은 프리고진 곁에 남았다. 약 한 달 뒤,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망명했을 때, 그는 바그너 용병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이것이 끝이 아니다"라며 "앞으로도 계속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의 시작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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