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 불과 이틀 전 건재 과시…"러에서도 사망 논란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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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 이후 사망 이틀 전에도 건재 과시
프리고진은 러시아군 수뇌부 축출 등을 목적으로 지난 6월 23일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을 하루 만에 접고 바그너그룹이 벨라루스로 근거지를 옮긴 이후에도 러시아를 오가며 건재를 과시했다. 사망 불과 이틀 전인 지난 21일 아프리카로 추정되는 사막에서 총을 든 채 발언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반역자'로 돌아서기 전까지 프리고진은 푸틴이 수족처럼 부린 최측근이었다. 시리아·리비아 내전 개입, 크림반도 강제 병합, 미국 대선 개입 등 러시아가 국제적 문제를 일으킨 사건마다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푸틴 덕에 부와 특권을 거머쥔 대가로 푸틴의 일은 뭐든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가 이끈 바그너그룹은 부차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등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잔혹성으로 악명을 떨쳤다. 동시에 바흐무트전에서 승리하는 등 일부 전과를 올리며 러시아 내 급진 세력 사이에선 인기를 얻었다. 올 초부턴 이례적으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의 관료주의와 무능함을 공개 비판해왔다. "이대로면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체제 전복이 일어날 수 있다"와 같은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프리고진의 정치적 부상을 러시아 정부가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군이 바그너그룹을 직접 통제하려고 하자 프리고진은 이를 거부하고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지도부(푸틴)을 전복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푸틴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레스토랑 운영하던 '푸틴의 요리사'
프리고진과 푸틴의 인연은 1996년 시작됐다. 당시 프리고진은 '콩코드 케이터링'이란 회사를 세우고 모스크바 등지에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98년부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상 레스토랑 '뉴 아일랜드'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과거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리고진은 "96년부터 푸틴(당시 대통령 총무실 부실장)을 포함한 러시아의 고위 관리들이 내 식당을 자주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푸틴은 프리고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인 2001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뉴 아일랜드'를 찾았을 때 그를 눈여겨보게 됐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은 가난을 딛고 부자가 된 프리고진의 성공 스토리에 매료됐다"고 전했다. 푸틴은 프리고진을 "소년"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쥐가 들끓는 아파트에 살며 배고픈 유년 시절을 보낸 푸틴이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프리고진은 푸틴의 생일과 크렘린궁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도 맡아 그에겐 '푸틴의 요리사'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정작 프리고진 자신은 "요리를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을 '푸틴의 도살자'로 불러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푸틴 만난 후 사업 승승장구
프리고진은 1961년 푸틴의 고향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WP에 따르면 그는 유년 시절 크로스컨트리 스키 챔피언을 꿈꿨다. 하지만 81년 사기·절도·매춘 등의 혐의로 감옥에서 9년간 복역하며 인생이 달라졌다. 출소 후 무일푼이었던 그는 노점에서 핫도그 장사를 해 많은 돈을 모았다.
이후 그의 사업은 레스토랑을 열 정도로 번창했고, 푸틴과 인연을 맺은 후 날개를 달았다. 2010년부턴 러시아의 학교와 군대 급식 공급 계약을 따냈다. 그해 프리고진은 급식 공급 식품공장을 열었는데, 푸틴이 직접 개장식에 방문했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러시아 비영리 단체 반부패 재단은 그의 회사가 정부 기관에 음식을 납품하며 손에 넣은 계약금만 최소 31억 달러(약 4조 978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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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러시아에서도 논란 될 듯"
프리고진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건 2014년 바그너그룹이 생겨나면서다. 바그너그룹은 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 러시아군을, 돈바스에선 친러 세력을 도왔다.
이후 시리아·리비아 내전을 비롯해 수단·말리·콩고민주공화국·모잠비크·마다가스카르 등에서 내전·분쟁에 개입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득을 챙겼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그룹은 학살·고문 등의 잔혹 행위를 저질러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프리고진은 댓글 부대를 운영해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바그너'란 그룹의 이름은 프리고진의 오른팔인 드미트리 우트킨이 붙였는데, 그 역시 이번 사고기에 동승해 사망했다고 가디언 등은 전했다.
크렘린궁은 반란을 철회한 프리고진의 신변 보장을 약속하고, 반란 닷새 뒤엔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면담했다고 했었다. 그러나 서방에선 "푸틴은 반역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며 추가 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달 "푸틴이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에 프리고진 암살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달 초부터 프리고진의 사업체 몰수에 착수했다.
BBC는 "이전에도 푸틴의 정적들이 암살되는 사례는 있어왔지만, 프리고진의 죽음은 러시아 내에서도 큰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프리고진은 크렘린궁의 일을 해왔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일부 러시아인들이 영웅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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