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요"...보복소비는 고소득층 얘기였다
직장인 조성민(42)씨의 지난달 월급은 1년 전보다 1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지출은 같은 기간 50만원가량 뛰었다. 각종 공과금부터 먹거리, 자녀 학원비까지 안 오른 게 없어서다. 무엇보다 2019년 집을 마련하느라 끌어쓴 대출 이자가 20만원가량 올랐다. 조 씨는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부쩍 늘어 부담스럽다”며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조 씨처럼 월급은 제자리걸음 하는데, 빠져나가는 돈은 늘었다고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치솟은 물가에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난 영향을 받았다. 다만 고소득층은 ‘보복 소비’를 늘렸다.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9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0.8% 줄었다. 2021년 2분기(-0.7%) 이후 7분기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다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소득에서 물가 상승 영향을 뺀 실질 소득은 3.9% 감소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이후 가장 많이 쪼그라들었다.
실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든 건 다락같이 오른 물가 때문이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5.1%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다. 2011년 이후 연간 물가 상승 폭은 3%를 넘긴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큰 폭으로 뛰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막대한 돈이 풀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다. 올해 들어서도 4%대를 유지하다 지난달 2.3%까지 떨어졌다.
소득은 줄었는데 씀씀이는 오히려 커졌다. 2분기 지출은 365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4.1% 늘었다. 방역 완화에 따른 오락·문화(14.0%) 지출이 가장 많이 늘었다. 외식 물가 상승을 반영한 음식·숙박(6.0%), 전기·가스요금 등 냉·난방비를 포함한 주거·수도·광열(7.4%) 지출 상승세도 두드러졌다.
특히 세금과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료, 이자비용 등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비소비지출’이 96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8.3% 증가했다. 비소비지출에서 주목할 만한 항목은 이자비용(13만1000원)이다. 1년 전보다 42.4% 폭증해 비소비지출의 13.7%를 차지했다. 한국은행이 2021년 8월 이후 10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한 여파다. 한은은 24일 금융통화위원회까지 5연속 금리를 동결했지만, 기준금리는 3.5%다.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처분가능소득(실제 쓸 수 있는 돈)은 383만1000원이었다. 1년 전보다 2.8% 줄었다. 2006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 지출이 큰 적자 가구 비율(23.0%)은 같은 기간 0.2%포인트 늘었다. 소득통계 권위자인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처분가능소득 감소는 소비 둔화로 이어져 서민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은 111만7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0.7% 줄었다.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은 1013만8000원으로 같은 기간 1.8% 줄었다. 빈부 격차 수준을 나타내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4배로 지난해 2분기(5.60배) 대비 완화했다.
‘보복 소비’는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얘기였다. 5분위 가구는 외식·여행 등 음식·숙박(16.0%), 자동차 구매, 항공료 등 교통(14.5%)에 지출하는 등 소비를 3.9% 늘렸다. 반면 1분위 가구는 식료품·비주류 음료(19.5%), 주거·수도·광열(19.5%), 보건(12.9%) 등 소비를 0.5% 늘렸다. ‘먹고, 놀고, 여행가는’ 소비를 늘린 고소득층과 살아가는 데 필수 소비를 늘린 저소득층이 대비됐다.
정원 기획재정부 복지경제과장은 “코로나19 지원금 지급 효과가 줄고 물가가 올라 실질 소득이 뒷걸음쳤다”며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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