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中경제 빠른 회복 불가해 내년 성장률 하향 조정"(종합2보)
내년은 2.2%로 0.1%p 낮춰
한국은행이 2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5연속 동결한 데 이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난 5월 전망치와 동일한 1.4%로 유지했다. 중국발(發) 리스크가 확산하면서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하반기 수출 전망에 빨간불이 커졌지만, 아직 그 영향력이 제한적인 데다 미국의 추가 긴축 여부가 불확실한 만큼 관망세를 유지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빠른 회복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2%로 기존 전망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경제의 상당 축을 담당하는 중국의 경기가 둔화, 글로벌 경기침체로 확산할 수 있어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이 흔들리면 금리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 금통위는 2021년 8월 이후 1년 6개월 동안 진행된 금리인상 행보를 중단했는데 지난달에 이어 이달까지 다섯 번 연속 동결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날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미국(5.25~5.50%)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역대 최대인 2.00%포인트를 유지하게 됐다.
금리동결 '만장일치'…한미간 금리격차 2.00%p 유지
한은이 이달 금리 동결을 결정한 배경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둔화하고 있지만 향후 재상승 우려가 있는 데다 최근 불거진 중국 리스크로 경기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서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로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이달 상승이 예상되고 미국의 긴축 향방이 아직 안갯속이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향후 물가경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판단이다.
이창용 총재는 "국내경제는 성장세가 점차 개선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상황"이라며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상당기간 지속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은은 수정 경제전망에서 현재 3.5%인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그대로 유지했다. 이 총재는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해 "7월 기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3%, 근원 물가 상승률이 3.3%였다"며 "8∼9월 다시 3%대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 뒤부터 천천히 떨어져 내년 하반기쯤 2% 중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1.4%로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정부는 하반기 수출이 플러스로 전환하면서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지만,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기대보다 미미하고 수출 주력품인 반도체 업황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경기 반등 시점도 늦춰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등 금리인상 요인이 있지만, 최근 중국 부동산발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경기가 불안해진 것이 금리동결의 배경으로 보인다"면서 "한은은 오는 25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잭슨홀 회의 연설에서 미 추가 긴축 방향성을 살피면서 향후 추가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 2.3%서 2.2%로 하향 조정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3%에서 2.2%로 하향조정한 것은 최근 중국 경기 둔화가 예상보다 심하고, 미국의 추가 긴축 전망과 국제유가 상승 등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에 앞으로 경기회복이 쉽지 않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0.9%를 기록했기 때문에, 한은 전망치를 달성하기 위해선 하반기 1.7%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최근 수출 상황과 경기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목표다.
중국 경기 둔화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는 무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수출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이 중요하다"며 "중국 경기가 일부 회복되더라도 예전만큼 좋아지진 않을 거란 의견이 많은 만큼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수출에서 중국 비중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절대 금액 자체가 많기 때문에 하반기에 미국 수출로 중국 수출 감소를 상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중국 당국이 부양책을 펼치고 있으나 효과가 잘 안 나타나고 있고, 부동산 기업 붕괴 위기도 불거지고 있어 중국 경제가 하반기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내년 성장률 하향 조정에 이유에 대해 "중국 경제의 빠른 회복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총재는 "지금 당연히 중국 부동산시장 변화 등 때문에 중국경제, 외환시장, 주식가격 변동에 초점을 두고 있는 건 알고 있다"면서도 "7월 이전에 예상한 중국 경제 성장률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는 "불확실 요인이 커졌고 그로 인해 침체 가능성이 커진 거지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은 크게 낮아지지 않아서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 1.4% 자체는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만 나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성장률이 낮아 금리나 재정으로 보완할 상황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금리나 재정으로 성장률 0.1%포인트 올리려 노력하면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中 경기둔화, 美 긴축…내년 경제는 더 불안
한은과 정부는 계속해서 우리나라 경기가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중국 부동산 시장 불안이 커지고, 디플레이션(물가하락)도 본격화되면 중국 수출 회복이 늦어질 뿐 아니라 국내 금융·외환시장으로까지 파장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 채권 시장에 중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추후 중국 자본 이탈이 시작되면 금리와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보다 강한 자국 고용·소비 상황에 연내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자금유출이나 환율 문제가 커질 위험이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2%포인트까지 벌어져도 아직 자금이 이탈한다는 신호가 없지만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질 경우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며 "한은도 고민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25일 열리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잭슨홀 연설 이후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8월 잭슨홀 연설에서 강한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을 쏟아내 전세계 시장에 충격을 줬는데, 만약 이번에도 추가 금리인상 시그널을 준다면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 한은으로선 금리 동결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은이 이날 내년 성장률 전망을 0.1%포인트 낮춘 것도 이같은 경기 불확실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물가 불안도 여전…국제유가 반등 촉각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경우 최근 안정세를 되찾고 있으나 이 역시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은은 이날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소비자물가가 3.5%, 내년 2.4%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5월과 동일한 수준이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 22일 국회에 출석해 "3% 밑으로 내린 나라는 선진국 중 우리가 유일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는 국제유가나 원자재 가격이 당초 예상대로 하향 안정화된다는 가정 하의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가격을 올리기 위해 감산을 지속하면서 글로벌 원유 가격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이미 80달러 중반대로 올랐다. 중국 경기 둔화 우려로 최근 다시 주춤하고 있으나, 사우디 등이 오는 10월에도 감산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연말까지 추가 상승 여지가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물가가 빠르게 내려왔던 건 국제유가 하락 영향이 큰데, 이제는 기저효과가 끝나가고 근원물가도 잡히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하반기에 외식비, 서비스 물가가 계속 오르면 인건비 인상 압박이 생길 것이고, 유가 상승 분위기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가계대출 증가는 집값 바닥론·금리인하 기대감 원인"
이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대출 증가 원인에 대해 "지금 부동산 관계 대출이 늘어난 것은 많은 사람이 금리가 안정돼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라며 "그런 예측이 많아지고 집값 바닥이니 대출받자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최근 집값 바닥론 확산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것은 집값 바닥 인식에 따라 이자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며 "지난 10여년간 금리가 굉장히 낮았고, 지금 젊은 세대가 인플레이션을 경험 못해서 다시 낮은 금리로 갈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샀다면 조심하셔야 한다"고 우려했다.
또 이 총재는 가계대출 증가세와 미 Fed 통화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금통위원 6명이 당분간 3.75%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봤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어가면 경제 성장이나 금융안정에 제약이 올 수 있는 만큼 현재 100% 이상인 이 비율을 90%를 거쳐 점진적으로 80%까지 낮추는 게 목표"라며 "다만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규제 등 미시정책으로 우선 대응한 이후 거시정책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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