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생태계 버리고 골프장 건설? 그게 최선입니까

이완우 2023. 8.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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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사포마을과 다랭이논 위쪽 지리산 숲 탐방

[이완우 기자]

 지리산 사포마을 산수유 숲길.
ⓒ 이완우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은 가까이에 다랭이논이 펼쳐져 있다. 마을 위쪽은 지리산 숲에서 맑은 물줄기가 계곡을 이루어 흘러내려, 마을과 다랭이논을 풍족하게 가꾸고 있다.
8월 하순에 처서 절기가 지나면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한 바람 기운이 느껴지며, 밭이나 논에 무성한 잡초들은 자라는 속도를 늦춘다. 사포마을과 다랭이논은 평온하고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사포마을 고샅길에서 고향의 정서가 담뿍 어린 돌담을 따라가다가 이 마을 주민을 만났다.
 
 지리산 사포마을 숲길.
ⓒ 이완우
 
마을 주민은 이 숲속의 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골프장을 짓겠다며 숲을 파헤친 현장이 있다고 했다. 이 사포마을 위쪽 300m 가까이 지리산 자락이 내려와 숲으로 머물러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이 가까운 이곳 지리산 자락 청정 숲에 골프장을 계획한다니, 그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사포마을 위에는 산수유나무 과수원이 숲을 이룬 산수유길이 지리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산수유나무들이 수백 년은 되었는지 나무 높이가 10m는 됨직하고 나무 밑동 둘레는 1m가 넘는다.

온갖 야생 생물 숨쉬는 이 곳에 골프장이라니
 
 지리산 사포마을 숲길. 며느리밥풀 꽃.
ⓒ 이완우
 
지리산 사포마을 숲 임도에서 반가운 풍경을 만났다. 풀숲이나 나뭇잎에서 나비들이 가볍게 날갯짓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고, 나비들도 역시 여기저기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부전나비와 네발나비 등 여러 종류의 나비들이 지리산 숲을 지키는 정령처럼 시야(視野)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무성한 가시모밀(며느리밑씻개) 덤불에는 배추흰나비가 분홍색 작은 꽃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지리산 사포마을 숲길. 가시모밀과 배추흰나비.
ⓒ 이완우
 
우거진 숲 그늘에 불을 밝히듯 현삼과의 한해살이풀인 며느리밥풀꽃이 환하게 빛난다. 임도 옆 널찍한 풀밭에 많은 벌통이 줄지어 놓여 있고, 꿀벌들이 지리산의 숲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아오고 있었다. 사포마을 위 지리산 숲 청정한 자연의 생명력이 나비와 벌들의 활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지리산 사포마을 숲의 계곡에는 맑은 물이 경쾌하게 소리 내며 흐르고 있었다. 큰 바위들이 포개어 쌓인 틈새로 물길이 떨어져 웅덩이를 이루며 사포마을, 산수유 숲과 다랭이논으로 향하여 생명의 젖줄이 되어 흐붓하게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 사포마을 숲길로 들어섰다. 부엽토가 쌓여 발걸음이 푹신하고, 숲 그늘의 습기 머금은 바람은 숲의 향기를 삽상하게 실어서 퍼뜨리고 있었다. 20여m 높이의 편백 몇 그루가 튼실한 자태로 숲길의 이정표가 되어 있다.
 
 지리산 사포마을 숲 계곡물.
ⓒ 이완우
 
마디풀과의 장대여뀌가 숲 그늘에 군락을 이루었다. 키 큰 장대여귀가 벋어 낸 긴 꽃대와 이삭에 붉은 꽃송이들이 듬성듬성 맺혀 있었다. 숲 그늘이 환해지더니, 숲이 사라진 곳에 도착했다.

너른 산등성이와 골짜기가 키 큰 나무가 하나도 없고 구릉지에 풀들만 무성하다. 지리산의 속살이 드러난 황톳길에는 지나간 장마철 집중호우의 흔적인지 토사가 유출되며 패인 생채기가 아프게 남아 있다.

사포마을에서 숲길을 걸어 올라오며 야생화 가득한 길섶과 향기로운 부엽토 숲길의 풍경은 이상향이었다. 숲이 절단된 현장의 현실 앞에서 멍하니 오랫동안 서 있었다.
 
 지리산 사포마을 숲 계곡물.
ⓒ 이완우
 
지리산골프장이 진행되어 지리산 자락이 파헤쳐지면 멀게는 이 지역의 야생 생물들이 사라지고, 이곳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생명의 원천으로 살아가는 사포마을과 다랭이논도 결국은 소멸할 가능성이 크다.

원래 있던 숲을 파괴하고, 잔디를 키우며 농약과 제초제를 다량으로 사용하여 계곡물을 오염시키고,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는 위기를 초래하는 게 골프장 진행 과정에서는 흔히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이 사포마을은 마을 위 계곡물에 제초제를 풀어놓는 환경이 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골프장이 지어지면 인근 지역의 땅값 상승, 개발 이익과 지역 경제 활성화가 눈앞의 이익으로 어느 정도 보장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훼손된 자연의 생태적 가치와 청정한 자연을 터전으로 삼은 공동체의 파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리산 사포마을 부엽토 숲길.
ⓒ 이완우
 
지난 1960년대 중반에 이 지역 구례 사람들은 무단으로 벌목되는 지리산의 나무들을 지키려고 10원씩 모아서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효시인 지리산국립공원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하며 '지리산 가는 길'을 자부하는 곳이 이 지역 구례이다.
사포마을로 내려오는 지리산 숲속 길과 임도의 야생화는 변함없이 여러 색깔로 아름답고, 나미와 벌이 꽃을 찾아 여전히 가볍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사포마을로 돌아오는 내리막 숲길의 내 걸음걸이는 점점 무거워지고 느려졌다.
 
 지리산 사포마을 숲 편백.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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