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며 웃는 서당 훈장님, 어른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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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기자]
▲ 뜨겁던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네요 |
ⓒ 박서진 |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더위도 처서 절기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네요. 강물이 바람의 연주에 맞춰 물결칩니다. 반짝 빛나는 은빛 물결이 몸을 앞으로 끌어당깁니다. 걸음을 멈춰 살랑이는 강물을 주인공으로 "찰칵" 사진첩에 보관합니다.
오늘은 수요일, 우리 친구들이 근처 서당에 가는 날이에요. 신입 원장은 업무 익히느라 한참 동행하지 못했답니다. 오늘은 하던 일도 잠시 미루고 친구들과 손잡고 서당으로 나섭니다.
"어머나! 우주반 강물이 춤추는 것 봐! 살랑살랑 정말 이쁘다."
"히히히~ 원장님 강물이 춤춰요?"
"그래, 저기 봐~ 물결 따라 움직이지?"
"네~ 춤을 추는 것 같아요."
6살 꼬맹이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공감해줍니다.
서당 오르는 계단은 친구들에게 조금 버거운 높이예요. "우주반, 계단 난간 잡고 천천히 올라가는 거야." 다정한 선생님의 지도에 "네"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우주반에 지난 5월부터 새로운 친구가 왔는데요, 시계가 천천히 가는 친구예요. 또래보다 움직임이 아직은 엉거주춤 미숙 하지만, 선생님은 친구 스스로 오를 수 있도록 "그렇지","한계단 더" 자신감 샘솟는 추임새로 응원해줍니다.
아이들의 인기척에 훈장 할아버지가 문 앞에 나오셔서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덥지? 더운데 오느라 수고들 했어요. 어서들 와요" 미리 틀어 놓은 에어컨으로 공기가 시원함에도 훈장 할아버지는 선풍기 바람을 우리 쪽으로 옮겨 주십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飮食雖厭 與之必食 음식수염 여지필식, 부모님께서 주시는 음식이 비록 싫다고 해도 주시면 반드시 먹어라. 服雖惡 與之必着 의복수악 여지필착, 의복이 비록 나쁘더라도 부모님께서 주시면 반드시 입어라.
음과 뜻을 알려주시며 허허 웃으십니다. "물론, 이건 예전 이야기예요. 그땐 음식도 옷도 귀하던 때니까."
순간, 훈장님은 정말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 시절을 보낸 어르신들 대부분 본인 생각이 확고하셔서 생각이나 세대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해 주십니다. 훈장님보다 훨씬 어린 저도 가끔은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을 찾는데 말이죠!
처음과는 달라진 아이들에 '엄지 척'
수업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곧 처음과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게 되었지요. 훈장님의 선창에 우렁찬 목소리로 따라 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며 편안했어요.
그리곤 세상에! 무릎을 딱 쳤습니다. 소리에 민감한 새로운 친구 ○○이가 서당 수업 첫날 친구들의 큰 목소리에 놀라 불안해하며 선생님 손을 잡고 나가자고 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곧 제 옆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있는○○이를 보게 되었죠. 깜짝 놀라며 대견했습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한 ○○이에게 '쌍 엄지척'을 해주었어요. 제 마음을 알아챘는지 방긋 웃어줍니다.
○○이가 어린이집 입소 전 엄마와 처음 방문하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다른 모습에 친구들이 의아한 모습을 보이자. 어머님이 빠르게 ○○이를 소개합니다. "이 친구 이름은 ○○이야.○○이는 책을 좋아해"
그리고, 입소 결정을 하고 어린이집 적응 중인 ○○이를 보고 친구 어머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 새로운 책 좋아하는 친구구나" "어머님, 어떻게 아셨어요? 책 좋아하는걸" "다른 친구 ㅁㅁ가 그러던걸요. 새 친구가 왔는데 그 친구는 책을 좋아한다고" 그날 우주반 친구들의 친구 소개하는 이쁜 마음에 얼마나 기분 좋던지요.
▲ 훈장님의 마음이 보태져 더욱 달달해요 |
ⓒ 박서진 |
지루함을 눈치 채신 훈장님께서는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너무 많이 하면 힘들어. 고생들 했어요"하며 차분하게 마무리 지어주십니다. 그리고, "아이들 이런 거 줘도 될까요?" 하시며 한과를 꺼내 보이십니다.
"어머나! 아이들 엄청나게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훈장님."
그 자리에서 바로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달달한 한과에 기분이 더욱 좋아진 친구들이 훈장 할아버지를 향해 인사합니다. "훈장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훈장님은 또 "허허, 그리고 이거 별거 아닌데... 부채예요. 제가 여기 글씨를 썼어요"라고 부채를 활짝 펼치시며 뜻을 풀어주십니다.
"그래요. 어렵지 않아요. 자, 操靑松如我友(유조청송여아우), 無心綠竹爲余師(무심록죽위여사)... 지조가 있는 소나무는 나의 벗과 같고 (사)심이 없는 푸른 대나무는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이라."
▲ 훈장님이 주신 냉방부채입니다. |
ⓒ 박서진 |
훈장님께 고개를 숙이게 되는 건 훈장님의 지식 덕분이 아니라 성품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아이들이 솔선수범하며 친구를 배려하는 모습이 벅찬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린이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물은 더욱 살랑이며 반짝입니다. 행복은 생각보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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