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칭찬 한 마디에 달라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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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향 기자]
한국의 전통 정서가 남아 있는 농촌에서 8남매 맏며느리로 농사를 지으며 어른들 세 분을 모신 서산문인협회 신금자(71) 시인. 그녀의 인생이 바뀐 것은 시아버지의 "어미야, 글재주가 있구나!"라는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벌레처럼 일에 중독되어 살면서도 시아버지의 한 마디 칭찬이 잊히지 않아 글귀가 떠오를 때마다 시를 적어 모아 두었다고 한다. 때로는 서러워서, 또 때로는 안타까워서, 그리고 행복해서, 감사해서 한 자 한 자 적은 것이 5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잠시의 빈틈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농사일과 예술 활동을 병행하는 시인의 고달픈 내면 세계가 시로 승화된 작품집을 내면서 시인은 '지금은 안 계신 부모님과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에게 이 글을 바친다'라고 그 고마움을 전했다.
쓰다 보니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시 창작은 물론 문인화, 사진 촬영 등을 통하여 좋은 작품을 빚고자 고뇌하는 그녀에게 충남문화재단 우수작품으로 5번째 시집 <감자꽃>이 선정되는 쾌거를 얻은 것이다.
김완용 시인은 그녀를 두고 "농사일 하면서도 문득 회억의 계단을 내려가며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그 그리움에 젖어 가슴 뭉클하게 부모님을 불러보기도 한다. 이러한 시적 감성들은 신금자 시인으로 하여금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를 쓰게 한다"라고 시인의 경험 토대 위에 세운 심미적 시상을 칭찬했다.
▲ 8남매 맏며느리에 시어른 세 분을 모신 ‘신금자 시인’ . |
ⓒ 최미향 |
- 요즘 근황은 어떻습니까.
"결혼한 지 50년이 되도록 매일 새벽 4시 즈음 일어나 그냥 묻힐 뻔한 일상을 글로 남기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의 시작 노트죠. 그 시간이 제겐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입니다. 글을 쓰고 나면 남편과 먹을 소박한 아침 준비를 하고, 저를 기다리는 들로 밭으로 나가보지요.
이어서 '이제 날개를 활짝 펴 훨훨 날아 마음껏 끼를 펼쳐보라'는 남편의 말에 큰 용기를 내어 글 공부하러 버스 타고 시내로 나옵니다. 그 시간은 눈물겹도록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림도, 출사도 시간 나는 대로 하고 있어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한 여정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 살아온 세월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친정이 서울이에요. 서울 출신인 제가 농사일을 뭐 그리 잘했겠습니까. 그런데도 과수원과 전답을 관리하며 일생을 일벌레로 살아왔습니다. 팔남매의 큰며느리로 시할머니, 시부모님을 모셨고요. 남들은 저를 두고 병시중까지 들었으니 참 복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참 복이 많은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친정 부모님은 물론 시부모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거든요. 또 세 아이의 엄마로 큰 살림까지 맡았지만 그래도 제 손으로 뿌리고 거두어 먹는 재미로 힘든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후회되는 일이 없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까요. 아쉽다면 너무나 사랑해 주셨던 시부모님께서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시아버님께서 제가 일기로 썼던 글을 보시고 글재주가 많다고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신 분이셨어요.
제가 일기를 쓰는 이유가 있어요. 제 삶을 정리하고 돌아보는데 시간을 가지는 시간이 그 시간이에요. 요즘은 세월이 너무 빨리 가요. 더는 기다려 줄 것 같지 않아 용기 내 책 출간을 했는데 아직도 부끄러워요. 하지만 분명 우리 시아버님은 하늘에서 장하다며 지켜보실 거예요. 제 시집을 바치고 싶어요.'
-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시골로 시집오셨습니다. 당시 얘기를 들려주세요.
"어린 마음에 사과는 거저 열리는 줄 알았어요(웃음). 농사를 안 지었으니까 그만큼 몰랐어요. 아마 남편이 농사를 지었으면 안 왔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식구들이 너무 좋아서 내려왔어요. 1974년 12월 15일 날 시집왔거든요.
조금 있다 첫 눈이 내렸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제 마음을 일기장에 끄적끄적 써놓곤 식탁 밑에 뒀는데 그걸 시아버님이 보신 거예요. 우리 아버님이 굉장히 점잖으셨고 글도 잘 쓰신 분이셨어요. 학교 교장 선생님이셨거든요.
'어미 글재주 있네' 그러시더니 책을 세 권 사다 주시는 거예요. 그중에는 '시 쓰는 법'이란 책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시잖아요. 농사일이 얼마나 힘들고 짬이 없는지…. 365일 햇볕에 그을리며 농사일에, 아이들 교육, 층층시하 어르신들 모시랴.
그중 4년 동안 시어머니 대소변을 받아내다 보니 변변히 책 잃을 시간이 없었어요. 할머님 92세, 어머님 94세, 아버님 95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늘 종종거리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 신금자 시인의 시집 '감자꽃' . |
ⓒ 최미향 |
- 언제부터 본격적인 시 수업을 받았는지요.
"어느 날 며느리가 상자에 넣어둔 제 글을 봤나 봐요. '어머니 문화원에 가서 (시)배우세요'라며 본인이 신청을 해 줬어요. 그러면서 서산시평생학습관에도 등록한 거고요. 당시 저희 어머니가 병환 중이셨는데도 며느리가 시 공부를 했지 뭐예요.
그만큼 복지가 좋더라고요. 요양보호사님이 하루 4시간 어르신들 식사며 그밖에 것들을 챙겨주시니 가능했어요. 요양보호사님이 가시면 제가 도착할 동안 남편이 부모님을 보살펴줬고요. 삼박자가 맞았으니 마음 놓고 공부를 하러 다녔죠.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아침 9시 버스를 타야 했어요. 논에서 일하다가도 아내가 버스 놓칠까 봐 쫓아와 채근했던 남편이었어요. 아마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지극 정성 보살피는 마누라 내가 챙겨줘야겠다' 생각했나 봐요(웃음).
▲ 신금자 시인의 작품? . |
ⓒ 최미향 |
- 이제 가족들의 도움 덕분에 다섯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 되셨습니다. 책 소개 좀 해주시죠?
"먼저 이 자리를 빌려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특히 제 남편에게요. 배 농사 때문에 아내가 신경 쓸 것 같으니 남편이 배나무를 모두 없애버렸어요. 그래야 마음 놓고 시 공부를 할 수 있다고요. 또 우리 며느리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시를 다 배우게 됐고요.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어느덧 5권의 시집 <하루살이 인생도 괜찮아요> <초록바람> <황홀한 고백> <하늘이 하품하면 땅은 까르르 웃는다> <감자꽃>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주로 농촌의 고단한 삶과 보람, 풍경, 일상에서 부대끼는 이야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등의 다양한 소재로 진솔하게 써 내려간 시집이에요.
먼저 '하루살이 인생도 괜찮아요'라는 시는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쓴 시인데 쓰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어요. 9남매의 맏며느리에다가 부딪치는 세월의 느낌들을 글로 옮겨 놓은 거지요.
사랑 가득 주시던 시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사무치는 그리움이 한 편의 시가 되고, 함께 지내던 장소와 함께 나누었던 음성이 그대로 남아 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습작하며 남편과 건강하게 서로 챙겨가며 살려고요."
신금자 시인에게 꿈이 있냐고 묻자 별다른 꿈이 없다고 했다. 다만 나이가 있으니까 농사일을 조금 줄이고 대신 남편에게 고마움을 갚고 싶다고 귀띔했다.
"남편 몸이 별로 좋지 않아요. 농사 많이 지은 분들은 주로 몸 고장 나고 그러잖아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마지막까지 둘이 손 꼭 붙잡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서로 챙겨가며 살려고요."
아래는 신금자 시인의 <하루살이 인생도 괜찮아요>에 나오는 '바보 부부'라는 시를 소개한다.
비슷한 사람끼리 마주 보고 앉았네
솜처럼 부드럽고
의자처럼 평안한 당신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
커피같이 쓰다 쓴 세월이었지만
구수한 향기 같은 당신이 있어
견딜 수 있었네
명절날
아이들 다 떠나보내고
나란히 곁에 누워
한날한시에 가자고 했더니
말없이 빙그레 웃어 주던 사람
생각해 보니
성낼 줄 모르는
우린 서로 바보 부부였네
▲ 신금자 시인의 작품 . |
ⓒ 최미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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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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