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재미·가성비·스테디셀러…빅 사이즈에 지갑을 여는 이유 [쿠킹]

송정 2023. 8.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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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점보·자이언트·빅·트렌타. 요즘 화제가 되는 제품의 이름 옆에 붙여진 단어들이다. 읽는 법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 바로 '대용량'이다. 일반적인 컵보다 용량이 2.5배 커진 음료수, 8.5인분으로 확 커진 컵라면, 마시멜로 함량을 12% 늘린 초코파이, 중량을 1.5배 키운 배 커진 삼각김밥까지, 몸집을 키운 제품이 화제다.

최근 화제인 제품은 '그랜드' '점보' '빅' 등 큰 사이즈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 롯데웰푸드]


대용량·재미 키워드 내세운 편의점
‘거거익선(巨巨益善)’ 흔히 TV 화면이 클수록 몰입성이 높아져 좋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인데, 올해는 식품업계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트렌드의 포문을 연 건 편의점이다. 소비 침체가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편의점은 성장세를 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업태별 매출 구성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유통시장에서 백화점 매출 비중은 17.6%, 편의점은 16.6%, 대형마트는 13.3%로 나타났다. 2021년 대형마트 매출 규모를 넘어선 데 이어 이젠 백화점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접근성이 뛰어난 장점을 내세운 편의점은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실제로 소용량 다품종 위주의 판매 전략을 유지해온 편의점은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자 ‘대용량’‘재미’ 등의 키워드를 내세우며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CU가 압구정 로데오의 인기 카페인 ‘이웃집 통통이’와 협업해 출시한 약과 쿠키는, 다른 약과보다 훨씬 큰 크기를 내세웠는데 판매 시작 5일 만에 초도 물량 10만 개가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품절템으로 화제를 모은 GS25의 점보도시락은 기존 86g인 팔도 도시락 대비 용량을 8.5배 키운 729g 초대형 컵라면이다. 이 제품은 GS25가 팔도의 IP를 확보해 선보인 단독 상품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엔 점보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인증하는 게시물이 연달아 올라왔다. 인기에 힘입어, 품귀 현상을 빚었고 온라인 중고시장에선 정가보다 2~3배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점보도시락은 처음부터 ‘화제성’에 주목해 개발했다. 점보도시락을 기획한 이진우 GS25가공식품팀 MD는 “먹방 콘텐트에 열광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선보인 점보라면은 용기면 매출 1위에 등극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기존의 상품 영역을 벗어나 기발하고 이색적인 상품을 개발해 가는 데 주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팬이 없다면 빅 마케팅도 소용없다

최근 누적 판매 1억병을 돌판한 '야쿠르트 그랜드'는 기존 제품보다 4배 큰 대용량이다. [사진 hy]

그렇다면 사이즈만 키우면 모두 성공할까. 물론 아니다. 경기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오히려 소용량 제품을 선호한다. 남아서 버리는 대신, 필요한 만큼만 사기 때문이다. 인기를 끄는 대용량 제품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객의 높은 충성도다. 마케팅 전문가 윤세노씨는 “대용량 제품 출시는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판매율이 높고, 고객의 충성도가 높은, 즉 자신 있는 제품일 때 유용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팬이 있는 제품이었을 때, 성공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hy의 ‘야쿠르트 그랜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기존 제품보다 4배 큰 대용량으로 출시했는데, 당시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며 일평균 7만병씩 팔렸고 첫해에만 1500만병이 팔렸다. 이후에도 꾸준히 찾는 사람이 늘며 최근 누적 판매량이 1억병을 돌파했다.

소비자의 목소리도 제품의 몸집을 키운다. 팬(Fan)과 소비자(consumer)를 합한 ‘팬슈머(Fansumer)'의 영향력은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식품업계의 키워드다. 단종되었던 제품이 소비자의 요구에 재출시되거나 업그레이드되기도 한다. 기업은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보다, 실패 위험은 줄이면서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에 윈윈이다. 오뚜기는 올해 4월 기존 컵누들 소컵보다 중량을 1.6배 늘린 '컵누들 큰컵'을 출시했다. 컵누들은 국내 최초의 당면 형태 용기 라면으로, 녹두 당면을 사용해 일반 용기라면 대비 낮은 칼로리와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 ‘다이어트’를 위한 제품으로 꾸준히 인기를 이어왔다. 이와 함께 온라인에는 ‘1개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양으로 든든하게 즐기고 싶다’ 등 소비자의 요구가 꾸준히 올라왔다. 이에 오뚜기가 제품 출시 20년 만에 ‘큰컵’으로 응답한 것이다.

기본 제품의 중량을 1.6배 늘린 오뚜기 컵누들 큰컵. [사진 오뚜기]


잘파세대 공략, 롯데 초코파이
새로운 소비자를 찾아 나설 때도 크기는 차별 포인트가 된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4월 무게를 40g으로 늘린 ‘빅 사이즈 초코파이’를 선보였다. 대형마트, 할인점 등에서 파는 초코파이류 제품 중에 최고 크기 수준이다. 제품 리뉴얼 뒤엔 소비자 조사 결과가 있었다. 롯데웰푸드는 초코파이에 대한 브랜드를 진단하고, 인지도 조사와 개선 사항 등 다양한 요소에서 소비자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디저트 시장을 이끄는 새로운 소비층인 1020 잘파(Z+α)세대가 상대적으로 자사 제품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 파이 시장의 주 고객인 중년층에서 벗어나 잘파세대 공략에 나서며 크기를 키운 것이다. 증량과 함께 맛도 개선했다. 마시멜로 부분을 중점적으로 키움으로써, 한입 물었을 때 입 안에서 포만감이 만족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시멜로 함량을 12% 늘린 롯데 초코파이. [사진 롯데웰푸드]


가성비는 대용량 제품의 인기의 주요 원인이다. 식품 마케터 황여정씨는 "경기 침체로 소비자의 지갑이 닫힌 시기엔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는 것보다는 스테디셀러 아이템의 사이즈에 변화를 줘서 SNS에서 바이럴되도록 만드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록적인 폭염과 고물가 이어진 올여름, 음료 시장은 대용량 제품에 주목했다. 갈증 해소를 위해 시원한 커피를 찾는 사람이 늘었는데, 이왕이면 여러 잔을 사는 대신 용량이 큰 제품을 사서 종일 마시는 것이다. 윤세노씨는 “하루에 커피를 한잔 마시는 사람보다는 2~3잔 마시는 사람이 많은데, 이때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고 용량이 큰 제품을 사서 여유 있게 즐기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지난 15일부터 아이스 커피를 트렌타 사이즈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개점 24주년을 맞아 9월까지 콜드 브루, 자몽 허니 블랙 티, 딸기 아사이 레모네이드 스타벅스 리프레셔 등 3종을 30온스(887mL)의 대용량으로 한정 판매하기로 했는데, 출시 약 3주 만에 누적 판매 60만잔을 돌파하는 등 인기를 끌자 아이스 커피로 확대한 것이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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