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요리사→도살자→반역자… 의문사 프리고진 “누구?”

김철오 2023. 8.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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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발 상트페테르부르크행 비행기 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러 “프리고진 탑승 확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요식업자 시절인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자신의 식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비행기 추락 사고로 24일(현지시간) 사망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반역자로 돌아선 인물이다. 추락 원인을 즉각 규명하지 못한 이 사고를 놓고 푸틴 대통령의 지시, 혹은 묵시로 이뤄진 암살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7년 전 ‘홍차 독살 사건’이 보여주듯 푸틴 대통령의 수많은 정적은 의문사를 당했다.

프리고진은 1961년 6월 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옛 소련에서 레닌그라드로 불렸던 곳으로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프리고진은 18세였던 1979년 절도로 붙잡혀 집행유예 2년6개월을 선고받고도 2년 뒤 절도‧강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소련 붕괴 과정에서 출소할 때까지 9년간 복역했다.

30대를 앞둔 나이에 출소한 프리고진은 노점에서 핫도그를 팔며 ‘인생 2막’을 열었다. 러시아 곳곳에 지점을 확장할 만큼 사업이 번창했고, 많은 부를 쌓으면서 요식업자로 성공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시장이던 푸틴 대통령과 친분을 쌓은 시기도 그 무렵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2000년 집권한 뒤부터 프리고진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내외빈 만찬과 연회를 도맡아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프리고진이 ‘인생 3막’에 들어선 건 2014년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을 창설하면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무력 병합에 가담했고,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의 여러 분쟁에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대외 확장력을 높여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주둔지에서 잔혹 행위로 악명도 날렸다. 이때부터 프리고진은 ‘푸틴의 도살자(butcher)’로도 불렸다.

프리고진이 바그너그룹을 창설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시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이다. 당시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내 최대 격전지로 꼽힌 바흐무트에 대원 5만명을 투입했다. 그중 러시아 교도소에서 감형을 미끼로 모집한 죄수가 4만명에 이른다는 추산이 나왔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5월 5일(현지시간) 언론 담당을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서 자사 대원들의 피살을 주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리고진은 올해로 넘어오면서 러시아 정규군을 통솔하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러시아 군 수뇌부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부족한 지원을 주장했지만, 공적을 놓고 쇼이구 장관과 대립해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얻으려 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프리고진은 SNS에서 러시아 군 수뇌부를 향해 ‘인간 말종’이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더니 지난 6월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거부하고 같은 달 23일 대원들을 이끌고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프리고진의 반란은 ‘일일천하’로 끝났다. 속전속결로 진행됐던 대원들의 행진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모스크바를 200㎞ 앞둔 곳에서 지난 6월 24일 회군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 대원들은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얻었지만,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반역 행위로 규정됐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가혹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그너그룹은 이후 벨라루스에 법인을 등록하고 주둔했다. 최근 폴란드·리투아니아 접경지에서 훈련을 시작한 정황도 포착됐다. 프리고진의 반란은 푸틴 대통령의 용서를 받은 듯했지만, 서방 세계는 ‘신변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푸틴 대통령의 집권 중 여러 정적은 의문을 남기고 숨졌다.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 출신으로 영국에 망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2006년 ‘홍차 독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라트비넨코는 호텔에서 전직 동료가 건넨 홍차를 마시고 숨졌는데, 찻잔에서 자연 상태로 존재하기 어려운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 발견됐다.

러시아 재난 당국이 23일(현지시간) 이날 트베리 쿠젠키에서 추락한 엠브라에르 레가시 제트기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다. 탑승자 10명은 모두 사망했다. 러시아 항공 당국은 탑승자 명단에서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확인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재난 당국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던 엠브라에르 레가시 제트기가 트베리 쿠젠키노 인근에서 추락했다. 초기 조사에서 승무원 3명을 포함해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쿠젠키노는 모스크바에서 약 300㎞ 떨어진 곳이다.

러시아 항공 당국은 “탑승자 명단에 프리고진의 이름이 포함됐다”며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암살설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 네바다주 타호호수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러시아의 비행기 추락 사고를 보고받은 바이든 대통령은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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