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독감백신 권고, 노인은 '고면역원성 백신' 우선 접종하라는데…
◇항체가 최대 50% 상승 '고면역원성 백신'
65세 이상이라면 일단 고면역원성 백신에 대해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고면역원성 백신이란 기존 백신보다 용량(항원)을 늘리거나 면역증강제를 추가해 면역반응이 강화된 것을 말한다.
고령자의 경우, 면역력도 노화해 기존 인플루엔자 백신접종 후 생성되는 항체 역가는 건강한 성인의 40~80% 정도 수준이며, 예방효과도 31~58%로 더 낮다. 고면역원성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항체 역가가 30~50% 이상 높아지고, 인플루엔자와 그 유사바이러스까지 예방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에선 수년 전부터 65세 이상엔 고면역원성 백신 우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대한감염학회가 인플루엔자 접종 권고를 업데이트 한 것도 최신 동향을 반영한 결과이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송준영 교수는 "고령자는 현장에서 체감할 정도로 기존 인플루엔자 백신의 효과가 일반 성인에 비해 낮고, 인플루엔자 합병증과 그로 인한 사망률은 나이와 정비례한다"며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해볼 때 고령자에선 고면역원성 백신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더 좋아 접종 권고를 변경했다"고 밝혔다.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김진남 교수도 "감염 예방과 중증화 예방 효과라는 측면에서 고면역원성 백신의 근거는 다양하다"며 "고령자에게 고면역원성 백신을 우선 권고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한감염학회가 권고한 고면역원성 백신은 사노피 파스퇴르의 ▲플루존 하이도즈(Fluzone High-Dose Quadrivalent)과 ▲플루블록 쿼드(Flublok Quadrivalent), CSL시퀴러스의 ▲플루아드 쿼드(Fluad Quadrivalent) 등 총 3개 품목이다. 3개 품목은 모두 고면역원성 백신이긴 하나 차이가 있다. '플루존'은 기존보다 항원이 4배 많아 3개 중 가장 고용량 제품(60µg HA/strain)이고, '플루아드 쿼드'는 항원 함량이 15µg HA/strain로 낮은 대신 'MF59'라는 면역증강제가 들어가 있다. '플루블록'은 항원 함량이 45µg HA/strain로 '플루존'과 '플루아드 쿼드'의 중간이고, 면역증강제도 없다. 대신 65세 이상에만 허가를 받은 다른 두 백신과 달리 18세 이상부터 사용할 수 있으며, 유전자 재조합 백신이라 임산부나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플루존과 플루아드 쿼드는 유정란 기반 백신이라 계란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에겐 사용이 제한된다.
◇3개 중 시퀴러스만 출시… 독주 가능성은 작아
이렇게만 보면, 올해 고령자 백신 시장은 완전히 고면역원성 백신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 인플루엔자 백신 시장에서 고면역원성 백신이 흥행할 가능성은 낮다. 권고한 고면역원성 백신 3개 중 2개가 국내에서 출시조차 되지 않아서다. 현재 우리나라에 출시된 고면역원성 백신은 시퀴러스의 플루아드 쿼드뿐이다. 사노피가 플루존의 국내 출시를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긴 하나, 구체적인 출시 일정은 불투명하다. 사노피 관계자는 "'에플루엘다'라는 이름으로 플루존을 국내에 들여올 예정이다"며 "최근 식약처에 에플루엘다의 허가신청서를 제출했고,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쟁제품이 없기에 시퀴러스 플루아드 쿼드가 고면역원성 백신 시장을 선점,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플루아드 쿼드가 독주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가격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가필수예방접종 지원사업(NIP)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검증된 백신을 대량 구매하고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인플루엔자 백신을 무료로 접종해주는데, 플루아드 쿼드는 NIP 사업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플루아드 쿼드를 접종한다는 건 무료로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두고 몇만 원을 추가 지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플루아드 쿼드의 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최소 4만원 초중반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시퀴러스는 플루아드 쿼드의 가격을 기존 4가 백신보다 더 높게 책정할 예정이다. 심평원 비급여 진료정보를 보면, 수입 4가 인플루엔자 백신인 '플루아릭스테트라'와 '박씨그리프테트라'는 3만원 중후반~4만원 초반이다.
의료 현장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시퀴러스가 시장에 안착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의료진 입장에서도 플루아드 쿼드를 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내과의사회 하상철 의무부회장(구민내과 원장)은 "65세 이상에서 고면역원성 백신의 효과가 더 좋다는 근거가 있긴 하나 가장 중요한 건 접종률이기에 현장에선 접종률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을 우선하게 된다"며 "환자 입장을 생각한다면 가격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상철 의무부회장은 "의사가 먼저 무료접종을 하지 말고, 고가의 고면역원성 백신을 접종하라고 할 수는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환자가 고면역원성 백신 접종을 원할 경우에 한해 충분한 설명 후 백신을 선택하게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플루아드 쿼드의 국내 수입물량 자체가 적어, 시장 선점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시퀴러스에서도 플루아드 쿼드가 NIP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국내 수입물량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아 인플루엔자 백신 시장에 미칠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시퀴러스가 생각보다 흥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대상포진 백신인 GSK의 '싱그릭스'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싱그릭스는 1회 25~30만원으로 총 2회 접종해야하는 고가 백신으로 평균 15만원대(총 1회 접종)인 MSD의 '조스타박스'와 SK케미칼의 '스카이조스터' 보다 훨씬 비싸다. 그럼에도 올해 2분기 대상포진 백신 매출 1위를 기록했다(아이큐비아 기준). 의원급 의료기관을 운영 중인 내과 전문의인 A씨는 "싱그릭스가 '프리미엄 백신'으로 강남 지역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생각보다 더 흥행했다"며 "백신은 의약품과 달리 접종자의 의사가 많이 반영되기에 플루아드쿼드도 초기 접종자의 평가에 따라 시장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제때 백신 접종, 백신 종류보다 중요
65세 이상 고령자, 특히 기저질환이 있어 면역력이 약한 경우는 달라진 인플루엔자 백신 권고에 고민이 많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고민을 하는 건 좋지만, 고민을 하다 접종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대병원 감염내과 정진원 교수는 "고면역원성 백신이 고령자일수록 더 좋은 건 맞지만, 상황에 따라 맞을 수 있는 백신을 제때 접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인플루엔자 접종의 목표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접종해 전반적인 면역력을 높이는 일이고, 기본 백신도 감염 예방과 중중화 예방 효과가 있다"며 "백신 종류와 상관 없이 '지금 맞을 수 있는 백신이 가장 좋은 백신'이라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접종 시기는 9월 말~10월을 권했다. 올해는 일년 내내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긴 했으나 예년과 다를 것 없는 시기에 접종하면 된다고 전했다. 하상철 부회장은 "올해 인플루엔자 장기 유행은 마스크 착용 해제 이후 발생한 특수한 상황이므로, 지금 인플루엔자가 유행한다고 해서 접종 시기를 앞당기거나 미룰 필욘 없다"고 밝혔다. 하 부회장은 "지난해와 다를 것 없이 고위험군 접종 권고일이 발표되면 그때 접종을 하면 된다"며 "다만 사람을 많이 만나 각종 질환 감염위험이 커지는 추석 명절 전후로 접종을 많이 하는 경향은 있다"고 말했다.
김진남 교수는 "우리나라 인플루엔자 백신 유행 최고점은 12월~3월이라는 점을 고려한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며 "9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고위험군 접종이 시작되면, 권고시기에 접종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어 송준영 교수는 "기존 표준용량 백신의 예방효과가 6개월 정도"라며 "9월 초 중순 경 백신을 접종하면 정작 인플루엔자가 대유행 하는 2~3월에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10월 중순쯤 접종을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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