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반란 두달만에 의문의 '전용기 추락사'…프리고진 누구
죄수, 요리사, 요식업사업가, 무장용병그룹의 수장, 러시아 재벌. 모두 23일 전용기 추락사고로 숨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그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푸틴의 사냥개’, ‘푸틴의 칼잡이’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무장반란을 일으켜 ‘반역자’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는 1981년 강도·사기 등의 범죄로 9년간 복역했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하는 와중에 출소한 그는 핫도그 장사로 밑천을 마련한 뒤 러시아 각지에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프리고진은 이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급 관료이던 푸틴 대통령을 손님으로 만나 친분을 쌓았다. 푸틴보다 8살 어린 그는 이 인연을 계기로 크렘린궁에서 열리는 각종 만찬과 연회를 도맡으면서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푸틴은 주요 내외빈과의 식사를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즐겨했다. 이때 프리고진은 곁을 지키면서 시중을 들었다.
프리고진이 본격적으로 푸틴의 신임을 얻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창설하면서다.
바그너그룹은 크림반도 강제 병합을 위한 전쟁과 시리아, 리비아, 수단 등 세계 곳곳의 분쟁에 러시아군 대신 개입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바그너그룹은 민간인 학살 등 잔학 행위로 악명이 높았지만, 프리고진은 이를 부인했다. 푸틴은 공식적인 경찰이나, 군대로 하기 어려운 일을 바그너그룹을 통해 해치울 수 있었다. 그가 ‘푸틴의 칼잡이’로 불리는 이유다.
음지에서 활동하던 프리고진이 세상에 등장한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이다. 프리고진은 당시 성명을 내고 바그너그룹을 창설한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의 공격을 주도했다.
서방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바그너그룹 용병 5만명이 투입됐으며, 이중 러시아 교도소에서 모집한 죄수들이 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프리고진의 세력과 재산은 러시아 신흥재벌로 불릴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러시아 군 수뇌부와 갈등하게 됐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바그너그룹의 활약을 과시하고 군부 인사들이 무능하고 비협조적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5월에는 군 수뇌부를 겨냥해 '인간 말종', '지옥에서 불탈 것' 등의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6월 10일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으나,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 꼴이 됐다.
재계약을 거부한 프리고진은 이후 6월 23일 무장반란을 일으키며 러시아 본토로 진격했다.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행위를 반역으로 규정하고 "가혹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이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사안은 종결됐다.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철군하는 조건으로 그와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36시간 만에 일단락된 것이다.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신변 보장 약속을 받아낸 프리고진은 무장반란 닷새 뒤 푸틴과 만나 면담했고, 7월 말에는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이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푸틴이 결국에는 프리고진을 제거할 것이라는 전망은 끊이지 않았다. 푸틴이 정적과 배신자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공고히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7월 5일 러시아 국영 로시야1 방송은 경찰 특수부대가 프리고진 소유 사업체의 사무실과 저택을 급습하는 장면을 방영한 뒤 프리고진에 대한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푸틴의 정적 다수가 그랬듯이 프리고진 역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단죄받기 전에 목숨을 잃게 됐다.
프리고진의 사망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다. 프리고진 측은 러시아 방공망에 의해 항공기가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서방에서는 프리고진의 죽음의 배후에 어떤 형태로든 푸틴이 연루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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