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보 하루천자]한양의 옛길, 그 시작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이경호 2023. 8. 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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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편찬원 ‘서울역사답사기7’ 7개 답사 경로소개
광화문서 시작하는 시장길…통금시절 표석들 살피는 순라길
지방서 올라온 선비 황윤석, 성균관에서 창동까지 출근길

광화문역 3번 출구에서 교보빌딩을 끼고 돌아 종로에 접어들면 혜정교 터 표석을 발견한다. 혜정교는 저잣거리의 시작점이고 육조거리와 만나는 지점이다. 혜정교 터 표석 중학천을 복원해 놓은 곳과 광화문D타워 아래의 작은 기와지붕이 있다. 그 아래에는 시전행랑의 유구들이 전시돼 있다. 시전행랑터에서 종각역을 향해 두 블럭 정도 걷다보면 그랑서울빌딩 못미쳐 또 하나의 기와지붕과 그 아래 우물터를 발견한다. 시전행랑유구길을 찾은 후에는 보신각을 거쳐 탑골공원에 다다르면 그 앞에 경시서 터 표석을 볼 수 있다. 경시서는 시전과 물가 등을 관리 감독하는 관청이다. 탑골공원 안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창덕궁, 이어 광장시장에 다다른다. 광장이라는 이름은 청계천의 광교(廣橋)와 장교(長橋)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최근 역사학자와 시민이 종로, 청계천 등 도심 속 길을 답사한 경험을 담은 ‘서울역사답사기7’을 발간했다. 답사기는 역사학자와 서울시민이 함께 10년간 서울 곳곳을 돌아보고 매년 답사기를 발간하는 대장정 프로젝트로, 이번이 일곱 번째 책이다. 이번 답사기는 ‘한양의 길을 걷다’란 주제로 7개 답사 경로를 소개한다. 앞에 소개된 길은 첫번째 길인 시장길이다. 모든 물자와 사람이 모이는 만큼 한양에는 운종가라는 대표적인 시장길이 있었다. 구름처럼 사람이 모였다 흩어진다해 ‘운종가(雲從街)’로 불렸던 이 길은 수도 한양의 탄생과 함께 계획돼 만들어진 길이다.

일제가 단절시켰던 창경궁과 종묘의 연결통로가 다시 이어진 2022년 7월 21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서 바라본 창경궁과 종묘 연결로가 일반시민 개방을 앞두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두번째 길은 순라길이다. 조선시대에는 밤 10시경부터 새벽 4시경까지 통금이 있었는데 이들을 단속하고 순찰하는 사람을 ‘순라꾼’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순라길은 종묘를 한바퀴 둘러 걷는 노포 감성의 가게와 힙한 카페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순라꾼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보면 치안 담당관청인 포도청, 사대부의 죄를 묻던 의금부, ‘이승의 지옥’으로도 불렸던 전옥서 등 종로를 중심으로 관청들의 표석도 살펴볼 수 있다. 표석 옆에는 천주교 순례길 안내판이 있어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순라길의 흔적은 광화문우체국 앞의 우포도청 터, 보신각 건너편 종각역 6번 출구 앞 전옥서 터, 1번 출구 앞 의금부 터 등에 남아 있다.

세번째는 서울에 올라와 관직생활을 한 선비 황윤석의 출근길이다. 황윤석은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성균관 옆 반촌에서 하숙을 하거나, 창동 수각교 부근 등 도성 변두리에 집을 얻기도 했다. 황윤석의 출근길은 걷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길다.

동관왕묘 전경 [아시아경제DB]

네번째는 조선통신사길이다. 도성내 관청으로 출근하는 관료들이 있었다면 4000㎞가 넘는 여정을 떠나던 관료들도 있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던 조선통신사들이다. 대궐로 들어가 어명을 받고 숭례문으로 나가 영남대로 시작 관문인 양재역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조선통신사들의 움직였던 행적이다. 숭례문을 통과해 도성 밖에 나온 조선통신사들은 남관왕묘에서 의관을 벗고 여정을 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양재역에 이르기까지는 중간중가 안부를 챙기기 위한 동료들과 전별연을 벌이기도 했다. 남산 밑의 전생서, 이태원, 항간진의 제천정 등이 대표적 장소다.

다섯번째길은 숙종의 거동길이다. 숙종은 1691년 정릉참배를 떠났다. 당시 전염병이 돌아 거처를 경덕궁에 마련했기 때문에 경덕궁에서 출발하게 됐다. 정릉이 도성에서 가장 가까운 능이라고 하지만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왕은 보제원-고암(오늘 안암)-사하리(오늘 미아리)-수유리 방향을 지나 정릉에 도착했는데 휴식처인 주정소는 사하리에 마련됐다고 한다. 정릉에서 참배를 마친 숙종은 사하리 교장에서 열무식을 비롯한 군사훈련을 마치고 환궁길에 세송천(정릉천)-고암(안암)-보제원을 거쳐 동관왕묘에 들른다. 정릉이나 동관왕묘는 서울에서 자주 찾을 수 있는 장소지만 당시 숙종의 능행에 얽힌 상징과 의미를 헤아리며 답사하면 의미는 배가 된다.

자연과 더불어 걷기 좋은 청계천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여섯번째 길은 도심속 휴식장소로 익숙한 청계천길, 영조의 위민준천(爲民濬川)길로도 부를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에는 나라를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펼친 영조의 뜻이 담겨있다. 오늘날 청계천은 기록에 대개 개천(開川)으로 불렸다. 도성 중앙을 통과했던 개천은 중요한 배수로이자 하수도 시설이 없던 조선시대 오물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영조는 하천 주변 백성들을 위해 준천을 실현했다. 2005년 복원·공개된 청계천은 서울을 상징하는 명소와 도심 속 휴게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산책을 즐기기 좋은 계절에 영조와 역사에 담긴 이야기를 더 해 걸으면 좋다.

수원 화성행궁에서 관광객을 위해 매일 열리는 상설 한마당의 한 장면 [아시아경제DB]

일곱번째 길은 정조의 효행길이다. 정조의 효행길은 한양을 벗어나 수원까지 이어진다. 정조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에 참배한다. 현륭원 능행때에는 기존에 이용했던 남태령방면으로 가지 않고 비교적 평평한 시흥쪽의 길을 선택했다. 5리마다 휴식처인 주정소를 마련해 연로한 어머니가 쉴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 행렬은 노량진에 설치한 배다리를 건너 시흥행궁-안양참-사근참행궁-지지대-만석거와 영화정-수원화성-만년제-현륭원-화성행궁에 이르는 8일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시행행궁, 안양참, 사근참행궁 등은 이제 위치를 알기 어렵지만 도심에서 한강대교를 거쳐 시흥방면 따라 수원화성과 융건릉에 이르기까지 답사해본다면 수원화성만 볼때와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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