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고깃집, 70년 중식당 '눈물의 폐업'…미래유산도 쓰러졌다
60년 된 ‘통술집’ 간판을 떼던 지난해 1월, 사장 고수덕(86)씨는 이삿짐을 두 번 쌌다. 한 번은 가게 짐, 또 한 번은 본인의 이삿짐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밀린 임대료와 수십 년 일한 직원에게 줄 퇴직금은 상상초월이었다. 20년 살았던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를 팔고서야 겨우 빚잔치가 끝났다고 했다. 고씨는 “60년 장사했는데, 빚만 남았다면 거짓말인 줄 안다”면서 “서울 강서구의 조그만 전셋집으로 이사한 후에 직원들이 찾아와 ‘힘들다고 해도 이 정돈지 몰랐다’며 안타까워 하더라”고 말했다. 60년을 바친 가게의 마지막 날을 이야기하며 고씨 눈엔 눈물이 살짝 맺혔다.
1961년 서대문 로터리 부근에 자리 잡은 통술집은 인근 회사원의 구내식당 같은 곳이었다. 상업가가 발달하지 않은 서대문구 특성상 단골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주변 회사원이었다. 싼값에 돼지고기에 소주까지 곁들일 수 있다고 소문나자 가게를 넓힐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2016년에는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60년 통술집을 무너뜨린 것은 코로나19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에도 주머니 사정이 궁한 샐러리맨 발길이 끊기지 않았던 곳이다. 고씨는 “코로나19로 장사를 못 하게 되니 월 1000만원 임대료가 1년 넘게 밀리고, 인건비도 감당 안 돼 항복했다”면서 “장사 마지막 날, 경북 김천에서 찾아온 옛날 단골에게 제값 다 받은 게 후회된다. 어차피 나는 적자인데 서비스나 줄걸”이라고 했다.
서울 동작구의 70년 전통 중식당 대성관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중국 산둥성 출신 화교가 개업해 3대가 걸쳐 한 자리에서 영업을 해왔다. 이런 역사 덕에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임대료와 원재료·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대성관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대성관 건물은 재개발돼 신축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했다.
흔들리는 자영업…미래유산 약 20% 폐업
23일 중앙일보가 서울시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식당·상점 등 소상공인 관련 서울미래유산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9개 지정됐다. 하지만 이 중 23개가 폐업했다. 경영악화로 폐업을 고민하는 가게까지 포함하면, 어려움을 겪는 가게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업력 20년 이상의 장수 기업 중 소멸기업(고용종사자가 없고, 매출이 잡히지 않는 곳)은 3만7000개로 2018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았다. 이 중 숙박 및 음식점업은 2256개로 역시 통계 집계 이래 최고 숫자를 기록했다. 하루에 약 6개 정도의 노포들이 사라진 것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수치는 2020년이 가장 최신 치다. 코로나19 피해가 본격 시작한 2021년이나 지난해는 사라진 가게들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촌 명물거리의 터줏대감이던 복지탁구장, 서울 용산구에서 50년 넘게 동네 주민들의 목욕을 책임졌던 원삼탕도 코로나19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시대 흐름에 밀리고, 임대 분쟁 쫓겨나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 뿐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자연스럽게 가게를 접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곳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세탁소‧서점‧목욕탕 등 최근 이용객이 줄기 시작한 업종이었다.
1972년 처음 문을 연 국내 1세대 헌책방 ‘공씨책방’은 책 읽는 사람이 줄면서, 경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씨책방 대표 장화민(67)씨는 “경희대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한 1970년대는 대학 교재랑 전집류를 많이 살 때라 신학기 한 번 지나면 목돈이 들어왔다”면서 “지금은 책은 안 사고, 가게 와서 사진 찍고 가버리는 손님들이 더 많다”고 했다.
50년 된 종로구의 터줏대감 일광세탁소도 가정용 세탁기가 보급되고, 빨래방 체인이 늘면서 매출이 줄자 결국 물러줄 사람을 찾지 못하고 폐업했다. 1971년 세워져 가장 오래된 음반사였던 서울음악사도, 1966년부터 인사동을 지키며 붓을 팔던 동헌필방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문을 닫았다.
경영난이나 시대 흐름 뿐 아니라, 임대 분쟁에 장사를 접은 곳도 있었다. 푸드트럭의 원조로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던 영동스낵카는 지난 2020년 영업을 중단했다. 영업하던 공간에 빌딩이 들어서면서, 퇴거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영동스낵카는 현재 경기 화성시에 사실상 흉물로 방치돼 있다. ‘노가리 골목’으로 유명한 서울 중구의 을지OB베어와 뮌헨호프도 재개발로 인해 수십 년 장사를 접고 다른 곳으로 가게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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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가 직접 배달, 레트로 열풍에 온라인 판매
수십 년 서울미래유산까지 사라질정도로 자영업의 사정이 악화하면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영업이 위축하면, 일자리 감소는 물론 소비 위축 등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또 채무가 많은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으면 연체율 상승 등 부채 부실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영환경과 시대 흐름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영세하지만, 직원 임금과 원자재·금리 등 비용을 모두 감당하는 삼중고에 처해있다”면서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이자 부담을 낮추는 등 자영업자 부담 경감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부 가게는 시대의 변화에 맞춘 변신으로 경영 활로를 모색하는 곳도 있었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된 대표적 대학 서점인 홍익문고는 지난해부터 적자를 보자 사장이 직접 책을 배달하고, 문구류를 파는 등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홍익문고 사장 박세진(57)씨는 “일단 적자가 안 나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배달도 하고 있다”면서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입점해 이 일대는 30분, 1시간 배송 서비스도 하는데 아직 하루 한두 건 수준이지만 자주 쓰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2015년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된 형제대장간은 레트로 열풍에 수제 농기구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오히려 찾는 사람이 늘었다. 질 좋은 명품 농기구로 소문나면서 사람들이 형제 대장간에 물건을 사서 온라인에 웃돈을 얹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형제대장간 사장 류상준(69)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지 않을 정도로 품질에는 자부심이 있다”면서 “시대가 변해도 품질이 좋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 논리에 의한 자영업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이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은 정부가 찾아야 한다”면서 “자영업을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일자리를 찾는 등 퇴로를 열어주고, 계속 자영업의 의지가 있는 사람은 업종 전환이나 기술 교육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김남준·서지원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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