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년치 비 덮친 '천사의 도시'…한국도 안심 못 할 이 수치

정은혜 2023. 8.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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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현지시간) 허리케인 '힐러리'가 덮친 캘리포니아주(州) 남부 사우전드 팜스 지역에서 자동차들이 물에 잠긴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천사의 도시’(Los Angeles)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로 1년 내내 날씨가 좋은 미국 서부 도시 LA가 1939년 이후 처음으로 허리케인에 직격탄을 맞았다. 동태평양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힐러리’는 LA가 속한 캘리포니아 주(州) 남부 해안가를 휩쓸며 이 지역 8월 강우량 기록을 경신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날씨가 온화하기로 유명한 샌디에이고에는 21일 하루 46.2㎜의 비가 내려 46년 만에 역대 8월 강수량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조하고 뜨거운 탓에 ‘죽음의 사막’이라는 이름이 붙은 캘리포니아 동부 데스밸리(Death Valley)도 힐러리가 몰고 온 비바람 탓에 홍수가 일어났다. 힐러리는 지난 20일 데스밸리에 하룻 동안 이 지역 1년 평균 강수량에 근접한 2.2인치(55.9㎜)를 뿌렸다. 데스밸리는 한 달 전만 해도 섭씨 50도를 넘는 폭염을 기록해 전세계 뉴스를 장식한 지역이었다. 미국 서남부에는 국립허리케인센터(NWC)가 처음으로 허리케인 경보를 발령한 지역들이 생겨났다.


추운 캘리포니아 앞바다 넘어온 ‘힐러리’


지난 18일 멕시코 앞 바다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허리케인 '힐러리'(사진 오른쪽에 위치한 소용돌이)의 모습. 사진 NOAA(미국 국립해양대기청)
힐러리는 올해 한국을 덮친 태풍 ‘카눈’처럼 이례적인 경로로 이동했다. 태평양에 면한 미 서부는 보통 허리케인이 상륙하지 않는다. 주로 미국 동부 태평양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서태평양이나 멕시코로 이동하고 이후 열대성저기압으로 약해진 상태로 미국 남서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다니엘 스웨인 캘리포니아주립 로스앤젤레스 대학(UCLA) 환경 연구소 기후과학자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캘리포니아 해안은 용승작용(바다 깊은 곳에서 차가운 물이 올라오는 현상)이 발생하는 지역인 데다 동에서 서로 바람이 부는 탓에 허리케인이 이 장애물들을 넘어 상륙하지 못한다”며 “이번에는 힐러리의 세력이 너무 강한 탓에 캘리포니아 앞바다를 지키던 장애물을 극복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동태평양 수온이 평년보다 높은 엘니뇨 현상이 더해져 이례적인 경로가 가능했다(케리 에마누엘 MIT 대학 허리케인 과학자)는 분석이 더해지고 있다.

실제 힐러리가 발생한 캘리포니아 남부와 멕시코 서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섭씨 2~3도 높았다. 전문가들은 올해 전세계 바다 곳곳에 나타난 고수온 현상이 열대성저기압의 세력을 강하게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강남영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해수면 온도와 대기 온도가 높다는 건 기본적으로 수증기를 담고 있는 그릇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올해 나타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고기압과 저기압도 각각 강하게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열대성저기압의 세력을 강화시킨 요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노멀 된 극한 날씨…한국도 하루 1년치 비 대비해야


22일(현지시간) 미국 동남부 텍사스주(州)가 열대성폭풍 '해럴드'로 인한 침수 피해를 겪고 있는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하는 미 동남부도 올해 유난히 잦고 강한 허리케인으로 비상이 걸렸다. 미 허리케인센터는 22일(현지 시간) 기준 미 동남부 지역에 3개의 열대성 저기압(거트, 프랭클린, 해럴드)에 대한 경보 또는 예보를 발령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와 관련 “극한 날씨는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며 “대서양 허리케인 시즌이 절정을 맞아 열대성저기압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고, 텍사스 남부는 극심한 더위와 가뭄에 맞서는 동시에 엄청난 폭우와 홍수의 위험을 동반한 ‘해럴드’를 맞닥뜨리게 됐다"고 밝혔다. 해럴드는 텍사스에서 홍수를 일으킨 뒤 23일 현재 열대성저기압으로 약화됐다.

“1년 치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는 소식은 올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 달 중국에서는 태풍 ‘독수리’ 상륙으로 허난성 정저우에 이 지역 1년치 강수량보다 많은 645.6㎜가 쏟아진 것으로 관측됐다. 한때 시간 당 강수량이 201.9㎜에 이르기도 했다. 지난해 8월 8일 강남역 침수를 일으켰을 당시 측정된 시간당 강수량 기록(141㎜)보다 60㎜ 이상 많은 수치다.

지난해 8월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빗물에 갇혔다. 사진 뉴스1

한국도 강한 태풍이 하루 만에 1년치 강수량(약 1200㎜)을 쏟아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은 “이미 2002년 태풍 루사 때 강원도 강릉에 하루 800㎜가 쏟아진 적이 있다”며 “올해 한국 주위 해수 온도가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미국,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관영 기상청 예보국장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단적인 강수 현상은 기후변화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추후 각 국가의 공식 데이터가 나오면 자세히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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