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관동 대학살’ 100년을 앞두고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21년 작고한 재일 사학자 강덕상 선생은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가 1975년에 이어 2003년 낸 책 '학살의 기억, 관동대진재'(한국에선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으로 번역됨)에는 끔찍한 살인 장면이 묘사돼 있다.
강덕상 선생은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사실 규명을 시도한다면 그대로 형무소행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인 대학살에 관해선 1959년이 돼서야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1년 작고한 재일 사학자 강덕상 선생은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가 1975년에 이어 2003년 낸 책 ‘학살의 기억, 관동대진재’(한국에선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으로 번역됨)에는 끔찍한 살인 장면이 묘사돼 있다.
“잡힌 조선인 24명을 13명 한 무리와 11명 한 무리로 하여 철삿줄로 묶은 후 갈고리로 쳐 죽여 바다에 던져 넣어버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자가 있어서 다시 갈고리로 머리를 찍었는데, 너무 깊이 찍은 나머지 갈고리 몇 개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그 외 3명의 조선인은 활활 타고 있는 석탄 코크스 불 속에 산 채로 한꺼번에 던져 넣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1971년에서야 공개된 목격담도 있다. “고문하여 살해한 조선인의 사체를 구라키바시 둑 곁에 늘어서 있는 벚나무의 강 쪽으로 내민 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200그루 이상의 나무줄기에 피투성이 시체를 매달아 놓은 것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일본의 수도권인 간토 지역에서 규모 7.9의 지진이 일어났다. 점심을 위해 각 가정과 음식점에서 불을 사용하는 시간이었다.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혼란 속에 유언비어가 퍼졌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식이었다. 재향군인회와 청년단으로 구성된 ‘자경단’이 조선인을 해치기 시작했다. 재향군인회는 갑오농민전쟁 때부터 한반도에서 활동한 퇴역 군인이 대다수였다. 군인과 경찰도 학살에 가담했다. 조선인들은 지진에 놀라 서로 의지하기 위해 모여 있었으므로 살해는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인 6000여명이 무참히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엄청난 사건은 침략의 야욕에 사로잡혀 있던 일본 내에서 1945년까지 은폐돼 있었다. 강덕상 선생은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사실 규명을 시도한다면 그대로 형무소행이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일본 사회는 지진 당시 사회주의자 9명이 살해된 사건을 먼저 주목했다. 조선인 대학살에 관해선 1959년이 돼서야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연구 결과가 학살이 실재했다는 것과 일본 정부가 이에 관여했음을 가리키지만 일본은 사과는커녕 진상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일본 야당 의원이 간토대지진 100주년인 올해가 사건을 제대로 다룰 마지막 기회라며 태도 변화를 요구했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할 기록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한국 정부도 무관심했다. 일본 측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지난해 진실화해위원회가 용역 연구를 통해 희생자 408명 명단을 확인한 게 관련 활동의 거의 전부다. 정부에 진상 조사를 위한 기구가 설치된 적이 없고, 국가 지도자가 이에 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사이 100년이 흘렀다. 사건은 한국과 일본 근현대사의 가장 큰 ‘미제’가 됐다. 가해자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희생자 유족은 원망할 대상조차 없다. 일본 사회는 사건에 점점 더 무감각해지는 모습이다. 도쿄도지사는 취임 첫해인 2016년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는 행사에 추도문을 보냈으나 2017년부터는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올해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할 일은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사료와 증언을 통해 기초적인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에 더 면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가해자의 책임을 확실히 하고 희생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현 정부는 한·일 간 협력을 중시하는 모습인데, 역사에 빈 구멍이 없어야 그 협력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권기석 국제부장 key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장실 썼으니 음료 주문하라, 맞나요?” [사연뉴스]
- 민주당, 촛불 들고 거리로… ‘오염수 방류’ 여론전 총력
- 신림동 성폭행 살인범은 30세 최윤종… 머그샷 공개
- 24시간 어린이집서 잠자다 사망한 2살…교사·원장 벌금형
- “숟가락 떨어뜨리면 500원”… 추가비 식당 놓고 ‘시끌’
- 서이초 연필 사건, 가해 학생 엄마는 현직 경찰 간부
- 자퇴 철회, 다시 등교? 백강현父 “사실 아니다” 반박
- ‘카공족’ 골머리에 특단 조치?…이디야에 걸린 안내문
- 관광지 해변 앞자리가 22만원…바가지 심한 ‘이 나라’
- ‘IQ 204’ 천재 소년의 현실… 일반·영재 학급 모두 소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