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LH 개혁 못 한 걸까, 안 한 걸까
아파트에서 철근이 무더기로 빠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충격적이다. 철근이 없으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파트 건설 전반에 최소한의 도덕성이라도 있었다면 철근 누락은 생길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LH는 국민 세금에 기반을 둔 공기업이다.
외양상으론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겹겹으로 있다. 설계, 시공, 감리가 분리된 시스템이 그것이다. 만약 설계에서 철근이 빠져도 시공 현장과 감리가 깨어 있으면 발견할 수 있다. 시공 단계에서 설계도에 있는 철근을 빠뜨리면 감리가 적발해 시정하면 된다. 그러나 설계·시공·감리의 상호 견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사태에 대한 여러 진단이 있다. 외국인 인력 문제도 그중 하나다. 아파트 건설 현장을 지키는 인력 대부분은 외국인 노동자다. 도면 이해도가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설계와 감리 인력의 역량 부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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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시공·감리 견제 작동 안해
LH 전관 특혜가 모럴 해저드 낳아
정부·LH 이번엔 반드시 혁신해야
」
그러나 핵심으로 지목된 것은 '전관예우'다. 구도는 이렇다. 발주처인 LH가 전관(퇴직한 LH 직원)을 앞세운 설계·감리 업체에 일감을 몰아준다. 업체 입장에선 전관이 사업 흥망의 열쇠다. 문제는 그것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LH 전관을 앞세워 일감을 따내면 되니 설계와 감리의 품질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진다. 전관을 고리로 한 이권 카르텔이 부실 설계·감리의 토양이 된 것이다.
LH는 토지 강제 수용과 공공주택 공급을 독점한다. 자산 규모 214조원에 연간 발주액만 10조원에 이르는 거대 공기업이다(2022년 기준). 2018년부터 5년간 올린 영업이익이 17조원을 넘는다. 그러한 독점권을 배경으로 LH가 주택시장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 지 오래다. 전관 특혜도 거기서 나온다. 민간 시공사와 설계·감리 업체 모두 LH 눈치보기 바쁘다. 그런 LH의 위세를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몰랐을까. 몰랐으면 무능이요, 알고도 놔뒀으면 직무유기다. 국토부의 책임이 무겁다.
LH 전면 개혁은 불가피해졌다. 참고할 사례가 있다.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2020년 1월~2023년 1월)은 취임식 때 “인사청탁은 반드시 불이익이 돌아가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인사청탁이 들어온 대상자는 감점했고, 일일이 인사카드에 기록을 남겼다. 청탁이 승진 탈락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인심을 잃었다. 하지만 실력은 있어도 줄이나 '백'이 없는 직원들은 손뼉을 쳤다. 반년마다 하는 정기 인사를 그렇게 세 차례 계속하니 더는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다. 인사 로비가 성행했던 국책은행의 후진적 조직문화가 확 달라졌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공인회계사회 회장 시절 관철해 낸 ‘지정감사제’ 사례도 있다. 기업이 6년간 감사인(회계법인)을 자유 선임하면 다음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기업 회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이 계기였다. 그 전엔 기업이 회계법인을 선택했다. 기업이 갑, 회계법인이 을이었다. 부적절한 회계처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어려운 구조였다.
지정감사제의 핵심은 기업 의사와 관계없이 감사인이 바뀌는 것이다. 새로운 감사인이 장부를 들여다보면 기존의 분식이 드러날 수 있다. 기업은 회계법인에 부당한 요구를 하기 어려워졌고, 회계법인은 그런 요구를 거부하기 수월해졌다. 지정감사제는 회계 투명성을 한 차원 높여놓았다고 평가받는다. 이 원칙을 LH 사태에 적용하면 의외로 간단한 해법이 나온다. LH가 감리업체를 선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공룡처럼 비대해진 LH 개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LH는 2년 전 직원 땅투기 의혹 당시에도 ‘해체 수준의 혁신’을 하겠다고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LH의 의지가 없었을 뿐이다. 그 사이 국민 안전은 위태로워졌고, 경제는 골병이 들었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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