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퍼스펙티브] “한국의 핵심가치 존중해야 공동 번영” 중국에 말해야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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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중·러 밀착 가속화, 평양 6·25 열병식 행사서도 연대 과시
대중 교역 중요하지만 중국의 ‘협박’엔 분명한 입장 보여야
한·미·일 최초의 독립 정상회의…한국의 협상력 더욱 커져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가치 확인, 우리도 질적 전환 필요해
」
“북한-러시아, 같은 참호에 서 있다”
그보다 두 달 앞선 1월에 나온 김여정의 담화는 국가 이름만 바뀌었을 뿐 마체고라 대사의 주장과 거의 판박이다.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과 압박 정책에 매달려온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 정책이 부득불 로씨야로 하여금 (중략) 선제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도록 떠밀었다”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했다. 이때에도 역시 북한은 “로씨야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 러시아는 해·공군 합동군사훈련을 대규모로 실시했다. 양국 해군은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의 해협을 통과해 일본 난세이 군도 부속 요나구니 해역에서 훈련을 실시했고,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폭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우리 공군기가 긴급 발진했다.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전승절’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 열병식에서는 김정은이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리훙중과 러시아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를 대동하고 나타나 최신 무인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자랑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6년 사드 배치는 2013년부터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사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미국과의 경쟁에 집중하는 중국은 미국이 한국 안보를 핑계로 사드를 배치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걸핏하면 날아다니는 북한의 미사일에 노출된 한국에 사드는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을 겨냥해 배치해 놓은 중국의 미사일도 이미 1000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에도 사드 배치 후 이어진 중국 내에서의 한한령과 혐한 행위에 대한 방조는 이해할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었다. 한국은 경제적·문화적으로 큰 피해를 보았고, 무엇보다 한참 피어오르던 양국 국민 간의 우호적 감정은 싸늘하게 식었다.
북한의 미사일은 이미 일본 상공을 수십 차례 넘나들었다. 자강도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재돌입체가 홋카이도 근처에 떨어지기도 했다. 2016년에도 북한은 저궤도 인공위성을 발사한다고 했지만 국제사회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라고 판단했고, 영공 침해를 우려한 일본이 요격하겠다며 강력히 경고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북한은 발사했다.
‘핵 선제 타격’ 협박하는 북한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관련국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10월에도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넘어가 기시다 총리는 긴급 대피명령을 내려야 했다. 기술력을 신뢰할 수 없는 북한의 미사일이 의도치 않게 어디에 떨어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 북한은 현실적 위협인 것이다.
2021년 초 북한은 ‘핵 선제 타격’을 운운하며 정초부터 남한에 대한 위협 수위를 전례 없이 끌어올렸다. 그래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북한과 비대면 방식으로라도 대화할 수 있다고 한껏 평화 제스처를 보냈다.
며칠 후 돌아온 대답은 김여정의 담화였는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족속들”이자 “처신머리 골라 할 줄 모르는 데서는 둘째가라면 섭섭해할 특등 머저리들”이라는 막말이었다.
북·중·러 합동 군사훈련 위협적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이런 맥락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고문이었던 빅터 차 교수는 이번 정상회의가 ‘아시아 지역의 변화하는 위협 인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위협의 판도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3개국 정상이 역사상 최초의 독립적인 정상회의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북·중·러가 밀착하고, 다른 나라에 대한 침공과 도발을 서로 옹호하고, 합동 군사훈련을 하면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고,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 했던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몇 배나 많은 군사적 도발을 하루가 멀다고 자행하고 있는 상황이 위협이 아니면 무엇인가.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중국은 ‘환구시보’를 통해 아시아에 ‘미니 나토’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 결과는 개입을 의무화하는 조약이 아니고 31개 회원국을 가진 나토와는 달리 호주·영국·미국으로 구성된 오커스(AUKUS),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와 더불어 국가 간 소규모 연합들의 ‘조각보’(latticework)에 가깝다는 점에서 나토와는 다르다.
나토와 굳이 비교하려면 그동안 유럽과 아시아가 가지고 있었던 협력 네트워크의 구조를 봐야 한다. 유럽은 나토를 통해 모든 국가가 다른 모든 국가와 연합하는 ‘다자간 네트워크’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시아는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일대 일로 협력하는 ‘방사형 네트워크’ 형태였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이고 일본과 미국은 동맹이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는 텅 비어 있는 형태이다.
악화한 한·일 관계 바로잡아야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다자간 네트워크는 힘을 분산시키고 방사형 네트워크는 힘을 집중시킨다. ‘어부지리’의 고사성어가 바로 이 상황을 지칭한다.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힘을 빼는 형태인 것이다. 빈칸이 채워지면 한·미·일 관계에서도 한국의 협상력은 오히려 올라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주일 미국대사인 람 이매뉴얼은 며칠 전 브루킹스 연구소 포럼에서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의 전략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첫 번째 동맹과 두 번째 동맹이 결코 함께할 수 없으리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한·미·일 삼자간 협의는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걱정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무역의존도 1위를 차지하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특히 남중국해 등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담긴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놓고 중국이 민감해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왜 이렇게 스스로를 검열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책임
우리는 스스로 검열하는데 중국은 필요할 때마다 거침없이 우리에게 보복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지 않는 ‘핵심 가치’를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리만 따지기 때문에 한국은 실리로 위협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우리가 먼저 심어준 것이다.
우리의 가치를 다른 나라에 강요하자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의 핵심 가치만은 훼손하지 않아야 공동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미·일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캠프 데이비드 문건을 채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것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인도태평양에서의 전략적 위치를 질적으로 전환해야 할 상황이었고, 일단 첫 단추를 끼웠다. 변화에 따르는 불가피한 비용을 잘 관리해갈 책임이 윤석열 정부에 남았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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