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변동금리의 덫
뜨거운 미국 경제는 한국 경제의 고민거리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 우려에 채권금리가 뛰고, 강달러에 원화가치는 속절없이 떨어진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뜨거운 이유는 고금리에도 좀처럼 줄지 않는 소비 덕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7일 ‘연방준비제도(Fed)가 올린 것은?’이라는 기사에서 높은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민간소비의 동력으로 꼽았다. 올해 1분기 미국의 가계부채 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89%이다. 대부분 대출자가 저금리 시절 연 2~4%대의 고정금리 대출을 받아 놓은 상태라 금리 인상의 타격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정기예금·머니마켓펀드(MMF)에 돈을 넣어만 두면 연 5%대의 금리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낮은 주택담보대출 이자율 덕분에 일을 덜 하고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있다”는 대출자의 사례까지 등장한 이유다.
물가와의 싸움에 나선 Fed 입장에서야 곤혹스러운 상황이겠지만, 금리인상 때마다 영끌족의 비명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전체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은 74%다.
금융당국도 2011년부터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 개선을 내세우며 고정금리 대출 비중 확대에 나섰지만 변변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부동산이란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고, 은행들 역시 차주에게 금리 리스크를 떠넘기는 변동금리 대출이 훨씬 용이해서다. 당장 가계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2020년에도 집값 잡기용 대출 옥죄기에만 집중하느라 고정금리 대출 확대 등 가계대출의 질적 개선에는 무관심했다.
올해 초 고정금리 대출을 늘린다며 시작한 특례보금자리론은 소득 문턱을 없애고,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내줬다 ‘고소득용 대출’ ‘가계대출 확대의 주범’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금융위는 지난 5월 “고정금리 확대는 가계부채 질적 개선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의 위기 대응 능력을 제고하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라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고정금리 대출 늘리기가 얼마나 힘을 받을지 의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가계부채가 더는 늘어나지 않도록 강력한 미시적ㆍ거시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은이 가계부채에 대한 본질적인 처방인 추가 금리 인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시장 참여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변동금리 대출자는 이자 부담에 비명을 지르고, 고금리에도 가계부채는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 속에 해법 찾기는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고정금리 전환 등 가계대출의 질적 개선에 좀 더 매진해야 한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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