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소진과 그 아내
비천한 처지를 극복하고 입신에 성공해 천하를 제패한 영웅호걸 가운데에는 중국 전국시대 소진(蘇秦, 생년 미상~기원전 284년)이 으뜸일 것이다. 동주(東周) 낙양성 사람으로 영명했으나 초년에 남들의 멸시 속에 살았다. 벗 장의(張儀, 생년 미상~기원전 309년)와 함께 귀곡자(鬼谷子) 문하에서 공부했다. 뒷날 서로 다른 주군을 찾아 헤어져 경쟁했으나 우정을 상하지는 않았다.
소진이 자기 딴에는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제후가 없었다. 그가 고향에 돌아오니 아내는 베틀에 앉은 채 돌아보지도 않았고, 부모는 자식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방에 들어가 『주서(周書)』 음부(陰符)를 공부했다. 졸음이 올 때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했는데 피가 종지뼈까지 흘렀다. 이 고사를 후세 사람들이 ‘소진자고(蘇秦刺股)’라 했다.
공부를 마친 소진은 합종(合縱)이라는 연맹체를 구성해 당시 중국의 7국 가운데 진(秦)을 제외한 초(楚)·연(燕)·제(齊)·한(韓)·위(魏)·조(趙)의 6국을 통합하고 승상이 됐다. 여섯 개의 승상 패인(佩印)을 허리에 차고 고향에 돌아오니 아내와 형제들이 그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형제들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옛날에는 천했으나 지금은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소진은 “내 형제도 저랬거늘 남들인들 오죽했을까. 나에게 낙양성 안에 이틀 갈이 전답만 있었던들 내가 어찌 6국의 승상 패인을 찰 수 있었으랴”라고 탄식했다. 그는 형제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풀었다.
누구인들 인생에 풍파가 없겠는가. 모든 인간은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즉 젊은이여, 꿈을 가지라. 실의에 빠져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소진이 외치는 듯하다. “낙양성을 바라보며 천하를 꿈꾸지 않는 남자는 장부가 아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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