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앞까지 찾아왔다…중고거래 사기 친 ‘그놈’
2020년, 6년 간 5000여 명의 피해자들에게 무려 50억원 규모의 중고거래 사기를 친 일당이 검거됐다. 범죄 수법은 악랄했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서류·사진 등을 조작해 고가의 물건을 허위 판매했다. 자신들을 추적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 집 주소로 수십만원 어치의 치킨·피자·중국음식을 주문하는 ‘배달 테러’는 물론, 신변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이 범죄에 공분한 이들 중에 박희곤 감독이 있었다.
중고거래가 일상이 된 시대의 현실적 공포를 그린 영화 ‘타겟’이 30일 개봉한다. 올 3월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접수된 중고거래 사기 피해는 8만3214건, 최근 9년간 81.4%나 증가했다고 한다.
‘타겟’은 박 감독이 2020년 ‘그것이 알고 싶다’(SBS), ‘뉴스르포’(JTBC) 등 TV 고발프로그램에서 접한 중고 거래 범죄 실화에서 출발했다. 고미술품 밀거래를 그린 ‘인사동 스캔들’(2009), 국보급 투수 최동원·선동열의 맞대결을 담은 ‘퍼펙트 게임’(2011) 등 실제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어온 그다.
21일 언론 시사 후 간담회에서 박 감독은 “범인들은 일부 피해자가 저항하면 끝까지 괴롭혀 정신병에 걸리게 하거나 자살 시도까지 하게 만들었다”면서 “피해자 중 가장 적극적으로 저항한 실존 인물이 여성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가장 용감하게 나선 게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해 주인공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데뷔 10년 만에 첫 스릴러 주연을 맡은 신혜선은 ‘타겟’의 주인공 수현에 대해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무색에 가까워 오히려 매력 있었다”고 했다.
‘타겟’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는 수현이 세탁기 중고거래 사기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잠적한 판매자를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찾아내 사기 행각을 밝히려다 범인의 보복에 휘말린다. 범인은 수현의 개인정보를 빼돌려 배달 테러를 하고, 조건 만남을 주선해 한밤중 낯선 남자들이 수현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게 한다. 수현은 수사가 더딘 경찰을 이끌고 끈질기게 범인 잡기에 나서지만, 단서 잡기가 쉽지 않다. 그때 같은 범인의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난다.
박 감독이 실제 피해 사례를 토대로 경찰과 피해자 간의 관계에 상상을 보태 시나리오를 썼다. 올 초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처럼 무심코 노출한 개인정보가 악용돼 일상이 붕괴하는 IT 범죄에, ‘도어락’(2018) 등 혼자 사는 여성이 남성 범죄자로부터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도시괴담’식 공포가 어우러진다.
‘타겟’의 중고거래 사기범은 살인까지 저지른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적 재미를 위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듯한 인상도 주지만, 중고거래가 살인사건으로 비화한 사례는 실제로도 존재한다. 2019년 중고거래할 소파의 상태를 확인하겠다며 고급아파트를 방문한 남성이 여성 판매자를 구타·살해한 사건이다. 부피가 큰 중고거래 물품의 경우 구매자가 판매자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로 이런 스크린 밖 현실이 공포감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간혹 개연성이 흔들리는 장면에서도 긴장감을 늦추기 힘들다.
범인의 위협이 현관문 앞까지 미치는데도 수현이 선뜻 이사하지 않는 이유도 실제 피해자 심리에서 따왔다. 박 감독은 “대부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예상 못해 선뜻 거처를 옮길 생각을 못 하더라”고 설명했다.
정의감·수사능력을 지닌 영웅적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난관을 헤쳐나가는 ‘연대’에 중점을 둔 게 이 영화의 차별점이다. 수현을 돕는 직장동료 달자(이주영), 사이버수사대 주형사(김성균) 등이다. 액션도 노련하게 짜인 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짐승 한 마리 잡는 듯”(김성균) 처절하다.
박 감독은 “인터넷에 올라온 중고거래 사기 피해, 지인들의 경험담을 조사한 게 도움이 됐다”면서 “경찰이 사건 초반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깝지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온라인상 추적이 쉽지 않은 데다, 범인들이 여러 나라 서버를 거쳐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 거래하는 것처럼 꾸미기 때문에 수사 관할이 애매하다더라. 사이버 범죄를 광역수사대에 넘길지 여부를 검토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배우 이주영은 21일 영화 관람 직후 “10년 전 봤으면 거짓말 같다고 했을 텐데 요즘은 흉흉한 일이 많아 영화가 소름 끼치게 현실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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