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전경련 신임 회장 | ‘미국통’ 경험 살려 ‘글로벌 싱크탱크’ 도약 [CEO LOUNGE]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우여곡절 끝에 류진 풍산그룹 회장(65)을 신임 회장으로 추대했다. 기관명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는 등 분위기 전환을 통해 재계 맏형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관심이 뜨겁다. 전경련은 류진 회장에 대해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탁월하다. 새롭게 태어날 한국경제인협회가 글로벌 싱크탱크이자 명실상부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줄 적임자”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국경제인협회’로 간판 바꿔
제39대 전경련 회장을 맡은 류진 회장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故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 막내아들로 1982년 풍산금속공업에 입사한 뒤 2000년 회장에 올라 20년 넘게 풍산그룹을 이끌어왔다. 풍산은 동전, 기념주화를 비롯해 각종 탄약, 포탄을 생산하는 알짜 중견기업이다. 방위 산업을 해온 만큼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해 오래전부터 대미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류 회장은 미국 정재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미국통’ ‘글로벌 마당발’로 유명하다.
부친인 류찬우 선대 회장 시절부터 풍산가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와 친목을 다져왔다. 1992년 풍산 미국 공장 준공식에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바버라 여사가 참석한 것을 계기로 수십 년간 부시 가문과 교류해왔다. 특히 역대 한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류 회장 인맥이 빛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3년 4월 참여정부 출범 초기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과정에서 류 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에는 미국 하원 의원단과 한국 재계의 만남을 주선했다. 2015년에는 류 회장이 직접 미국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이 대회를 아시아 최초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 4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 동행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한국 재계의 오찬 간담회를 직접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류 회장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공로 등을 인정받아 2005년 금탑산업훈장, 201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지난해도 한미 친선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탄탄한 글로벌 인맥이 류 회장의 최대 강점으로 손꼽힌다. 류 회장은 일본에서 초등학교부터 국제학교를 다니고 유학 생활을 오래해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 프랑스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한다. 덕분에 미국뿐 아니라 일본 정재계 네트워크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국내 경제단체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2001년부터 전경련 회장단에 속해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CSIS 이사 등을 거치고 올 4월에는 전경련 한미 재계 회의 한국 측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 요직도 역임했다.
과제도 적잖아
‘싱크탱크형 경제단체’ 변신 미지수
우여곡절 끝에 류진 회장이 전경련 새 수장에 올랐지만 과제는 산더미다.
당장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그룹의 전경련 복귀가 중요한 변수다. 전경련은 최근 4대 그룹에 새로 출범하는 한국경제인협회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각 기업은 이사회를 통해 수락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내부적으로 고심이 크다.
2016년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 후원금 모금에 따른 정경유착 논란으로 LG를 비롯해 현대차, 삼성, SK 등 4대 그룹 모두 전경련을 탈퇴했다. 탈퇴 전 4대 그룹은 전경련 회비의 70%를 도맡아왔다. 재계 위상을 보더라도 4대 그룹이 전경련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재계 대표 단체 위상을 되찾기 어려운 만큼 재가입 여부가 중요하다.
그나마 4대 그룹 수장이 최근 전경련 행사에 참여하며 달라진 행보를 보인 점은 눈길을 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는 지난 3월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주최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했다. 이어 4월 미국에서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미 재계 행사에도 4대 그룹 총수 모두 자리를 함께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지난 5월 25일 전경련의 국민 소통 프로젝트 ‘갓생(God生) 한 끼’에 참여해 긴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갓생 한 끼는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으로, 정 회장은 MZ세대 30명과 점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한국경제인협회 출범 이후 4대 그룹이 점차 복귀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상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삼성 이외에 SK, 현대차, LG 등 다른 그룹도 이사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 변수다. 재계에서는 오는 9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4대 그룹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려 재가입 시기를 한참 미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만약 4대 그룹이 재가입하면 환골탈태하는 전경련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면서도 “전경련이 새 회장을 선출하고 기관명까지 바꿨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혁신 조치를 내놓지 못한 만큼 복귀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변수”라고 귀띔했다.
전경련이 산하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만큼, 이와 관련한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
전경련은 오랫동안 정치적 행보보다 회원 서비스에 집중하고, 회원이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는 단체로 탈바꿈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를 위해 업종 이슈별 위원회를 구성해 기업 참여를 보다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회원사에 대한 물질적, 비물질적 부담을 심의하는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현재 11명인 전경련 회장단도 확대하기로 했다. 산업 흐름이 바뀌고 기업인도 젊어진 만큼 시대 흐름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 같은 혁신안이 제대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전경련은 앞서 2016년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가 벌어진 이듬해 쇄신안을 내놨음에도 뚜렷한 성과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경연을 흡수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두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혁신안’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이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은 최근 성명에서 “전경련이 제대로 된 혁신도 없이 간판만 바꿔 달고 신(新)정경유착 시대를 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류진 회장이 몸담은 풍산그룹이 재계 70위권에 그쳐 재계 대표 역할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온다.
결국 재계의 실질적인 요구부터 상세히 파악해 전경련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분석이다. 새롭게 총대를 멘 류진 신임 회장 어깨가 여느 때보다 무거운 이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3호 (2023.08.23~2023.08.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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