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언론 학살과 그 부역자들
[오태규 기자]
▲ 2012년 9월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원씨 부인 유승옥씨와 고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씨가 남편의 영정사진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
ⓒ 권우성 |
박 정권이 폭압을 가하면 가할수록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의 저항도 더욱 더 거세졌습니다. 위협을 느낀 박 정권은 이를 억누르려고 간첩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바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2차 인혁당) 사건입니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적색 공포증(레드 콤플렉스)'을 이용해 민주화 요구를 잠재우려는 악랄한 음모였습니다.
민복기 대법원장이 이끌던 당시 대법원은 그해 4월 8일, 중앙정보부와 검찰이 조작한 기소장을 바탕으로 도예종씨 등 8명에 대해 사형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박 정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날 새벽, 사형 집행을 했습니다. 가족에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사형 집행 다음날, 이를 '사법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사형 집행일인 '1975년 4월 9일'을 '사법 암흑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사형 집행 32년 만인 2007년, 무고한 희생자 8명은 비로소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필귀정이지만 이미 앗긴 목숨은 되돌려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히려 '사법 살인'과 '사법 암흑의 날'이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지 절감했습니다.
▲ 지난 8월 2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 정권의 언론 학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역자는, 김효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입니다, 사법 살인 당시 수사 재판의 책임자였던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민복기 대법원장, 이용택 중정 제6국장 같은 인물이 환생한 듯합니다. 신직수, 민복기, 이용택 등이 정권에 충성한 덕에 사건 이후에도 떵떵거리면서 잘 살았으니, 그런 전례를 따르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김 직무대행이 8월 23일 임기를 마치면 곧바로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직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언론계에 자자했었습니다. 이에 멍석을 깔아주려는 듯, 윤 정권 들어 임명된 '친윤 이사 3인방'이 16일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표완수 이사장 몰아내기 쿠데타를 꾀했습니다. 비상임이사들의 반대와 기권으로 쿠데타는 미수에 그쳤지만, 그가 언론 학살을 한 대가로 앞으로 어떤 훈장을 챙길지 지켜볼 일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요구하는 KBS, MBC, EBS 이사들이 지난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KBS 남영진 전 이사장, MBC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전 이사장, EBS 유시춘 이사장을 비롯한 전, 현직 이사들이 참석했다. |
ⓒ 권우성 |
8월 14일에 남영진 한국방송 이사장 해임 건의안과 정미정 교육방송 이사의 해임안을 처리하더니, 임기 만료를 이틀 앞둔 21일에는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몰아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윤석년 한국방송 이사를 쫓아냈습니다. 다음 달엔 김기중 방문진 이사도 목을 날리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가 몰아내거나 사퇴한 공영방송 이사 자리에는 '이명박근혜' 정권 때 정권 앞잡이로 악명을 떨쳤던 황근(한국방송), 차기환(방송문화진흥회)씨를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모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엉터리 법 적용과, '억울하면 법정에서 따지라'라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폭거입니다.
김 직무대행의 악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기 직전인 17일,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쥐도 새도 모르게 기습적으로 해촉했습니다.
이때 밑밥을 깔아준 이도 그입니다. 방심위 감사를 통해 업무추진비 집행과 출퇴근 시간 관리 등에서 사소한 문제를 겨우 찾아냈는데, 이것이 해촉 사유가 됐습니다. 국민의 혈세에서 나온 특수활동비 중 수십억 원을 증빙자료도 없이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마구 써온 '윤석열 검찰'의 행태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하도 엄청난 일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바람에 가물가물해졌지만, 대통령실의 지시에 따라 법률을 위반하면서 처리한 '한국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도 그의 빼놓을 수 없는 폭거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5월 30일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면직으로 본격화한 윤 정권의 언론 학살극은, 모든 방송과 신문이 '땡윤 뉴스'로 도배질 될 때까지 부역자들의 협조 아래 계속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눈치코치 보지 않고 대량 언론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목적입니다.
임무를 마치고 물러나는 김효재씨 뒤에는, 그보다 훨씬 교활한 '언론 파괴 및 장악 전문가', 이동관 방통위원장 지명자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동관씨는 방통위원장 자리에 오르자마자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사장 교체를 진두지휘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공영방송의 힘을 빼고 '사영 방송'에 힘을 실어주는 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입니다.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 이미 이런 '음흉한' 생각을 털어놨습니다. 그래야 보수 기득권 세력이 일본의 자민당처럼 연년세세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겠죠.
그와 발을 맞춰 언론 장악 작전을 수행할 과거의 언론 탄압 기술자들도 속속 집결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문화방송 노조 탄압의 선봉장이었던 이진숙 전 대전문화방송 사장이 김효재씨의 후임으로 국민의힘 추천을 받아 출동대기 중입니다. 기습 해촉된 정연주 방심위원장 자리엔 와이티엔(YTN) 재직 때 자신이 관할하는 방송에 가족 사업을 홍보하고, 노조 비방에 앞장섰던 류희림씨가 즉각 지명됐습니다. <연합뉴스> 사장 재임 때 '불공정 편파' 보도로 사원 대다수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았던 박노황씨도 교통방송(TBS) 이시장으로 복귀했습니다.
한국언론사에서 지금만큼 한국 언론이 '사느냐, 죽느냐', 아니 한국의 민주주의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는 없었습니다. 반면, 정권의 전횡에 이렇게 무력한 언론계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마냥 이해타산을 따지기에 급급한 모습마저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부역 세력은 뻔뻔하게 학살극에 가담하면서 사익 챙기기에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 지난 8월 16일치 <기자협회보>. 1면 머릿기사 제목은 <기자 85% "윤 대통령, 대언론 소통 잘못하고 있다">. |
ⓒ 김지현 |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절대다수의 현장 기자가 윤 정권의 언론정책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59주년을 맞아 벌인 여론 조사(7월 27일~8월 7일 조사)를 보면, 85.1%의 기자가 '윤 정권이 대언론 소통을 잘못하고 있다', 63.2%가 '언론 활동이 자유롭지 않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입만 열면 '자유'를 되뇌는 윤 정권이 자유의 핵심인 '언론자유'를 압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정권은 잠시 승리할지 모르지만 길게 갈 수 없습니다. 당시엔 '묘수'처럼 보였던 '사법 살인'도 끝내 그 만행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부역자들은 '역사의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역대 정권이 벌여온 언론 탄압도 마찬가지였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전대미문의 언론 학살극을 보면서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서 성긴 듯하지만,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라는 말을 그들에게 들려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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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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