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샘] MZ 세대 ‘요’와 ‘D’… 기독 언어로 바꾸기

2023. 8. 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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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MZ 세대를 '요'나 'D' 세대라고 빗대어 설명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MZ 세대는 '왜요?' '그걸요?' '제가요?' '지금요?' 등 마지막 글자가 '요'로 끝나는 반문의 언어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자기 의사와 맞지 않는 일에 대해 일종의 심리적 저항을 표현한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세대가 상하 획일적인 '지시형'이라면 MZ 세대의 '요?'는 상호 '이해형'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MZ 세대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비판의 뜻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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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MZ 세대를 ‘요’나 ‘D’ 세대라고 빗대어 설명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MZ 세대는 ‘왜요?’ ‘그걸요?’ ‘제가요?’ ‘지금요?’ 등 마지막 글자가 ‘요’로 끝나는 반문의 언어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자기 의사와 맞지 않는 일에 대해 일종의 심리적 저항을 표현한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세대가 상하 획일적인 ‘지시형’이라면 MZ 세대의 ‘요?’는 상호 ‘이해형’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MZ 세대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비판의 뜻도 담겨있다.

같은 맥락에서 3D로 일컬어지는 영어 단어 첫 글자가 ‘D’로 시작하는 ‘dangerous’ ‘dirty’ ‘difficulty’는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그리고 ‘까다로운’ 일은 회피하려는 젊은 세대에 대한 우려의 의미가 담겨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할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기성세대는 자기 좋아하는 일만 골라 하려는 MZ 세대의 성향에 대해 자못 의아해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요’와 ‘D’의 언어적 이해는 세대에 대한 이해를 넘어 기독교 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왜 내가 굳이 그 어려운 십자가의 짐을 지고 지금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가?”

크리스천에게 떠오르는 이러한 질문은 사실 우리가 주님이 걸어가신 ‘좁은 길’을 떠올리면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요’와 ‘D’의 언어를 새롭게 바꾸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즉, 부정적인 ‘요’를 긍정적 ‘요’로 바꾸는 것이다. ‘왜요?’를 ‘그래요’로 ‘그걸요?’를 ‘알았어요’로, ‘제가요?’를 ‘감사해요’로 그리고 ‘지금요?’를 ‘걱정하지 마세요’로 대신 대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창조”(사 57:19)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며 우리의 고백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

비록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 때때로 놓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한마디 언어는 자신과 주변을 바꾸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이는 단순히 자기 최면이 아니라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크리스천의 삶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네 번째 ‘D’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은 ‘dangerous’ ‘dirty’ ‘difficulty’가 아니라 ‘divine’이라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일은 ‘신적’이다. 우리가 사람을 보고 환경을 보고 그리고 조건을 보면 당연히 그 일은 어렵고 치사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헤아리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다.

출애굽 여정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가장 큰 죄 중의 하나는 ‘불평’이었다.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께 입술의 불평은 쉬지 아니했다. 목이 말라서, 쉴 곳이 없어서, 고기를 먹고 싶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한 불평이 끊이지 아니했다.

심지어 40년을 먹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주신 음식 ‘만나’에 대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 21:5)하고 불평을 쏟아냈다.

오늘도 우리는 광야의 여정에 다시 들어선다. 깊게 영적인 심호흡을 하고 긍정적인 언어로 입술을 재무장하자.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이 거룩한 것이기에 자기 부정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이 되자.

유경동 목사
감리교신학대 교수·기독교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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