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모아야" "합의 기반해야"…브릭스 확대에 시진핑·모디 '기싸움'

신경진, 김민정 2023. 8. 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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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샌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5차 브릭스 정상회담에 시진핑 주석이 입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BRICS)의 5개국 정상이 남아공 요하네스부르크에서 15차 정상회담을 열고 회원국 확대 등 현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브릭스를 확대를 놓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주도권 경쟁이 펼쳐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화상으로 참여했다.


習 “20여 개국 브릭스 가입 진심 환영”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자기의 ‘집안 법치와 집단의 규율’이 국제 규칙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서구 주도의 국제질서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매우 많은 개도국이 브릭스 협력 매커니즘에 가입을 신청했다”며 “우리는 개방과 포용, 협력 공영의 브릭스 정신으로 더 많은 나라가 브릭스 대가정에 가입해, 대중의 지혜를 모으고, 집단의 힘을 모아 글로벌 거버넌스가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추동해야 한다”고 회원국 확대를 역설했다.

모디 총리도 브릭스 확대에 힘을 실어줬지만 ‘합의’란 조건을 달았다. 타임스오브인디아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이날 전체 회의에서 “브릭스의 새로운 국가를 포함하는 확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합의에 기반해 이 문제를 진전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비하려면 브릭스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남반구 국가들에게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내달 9일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회담 의장국 정상으로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을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전날 열린 브릭스 비즈니스포럼에서 왕원타오(王文濤) 상무부장이 대독한 연설에서 시 주석은 “브릭스 국가를 대표로 하는 신흥시장 국가 및 개발도상국의 군체성(집단적) 굴기(崛起·우뚝 섬)가 세계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꿨다”면서 “브릭스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심화시키고, ‘브릭스 플러스(+)’ 모델을 확대해 적극적으로 회원 확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이 빠진 브릭스를 세력 확대의 핵심 무대로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1일 1면 머리기사로 “주요 7개국(G7)이 세계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브릭스를 확대한다면 세계에서 중국의 집단적 목소리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익명의 중국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반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전날 페이스북에 “브릭스는 G7의 상대도 아니고, G20의 상대도 아니며, 누구도 아니다”라는 글을 올려 대결 구도에 반대했다. 브라질은 중국 주도의 확대안에 저항하는 세력이 강해 ‘옵서버’나 ‘파트너’로 가입 신청을 받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올해 의장국인 남아공 역시 회원 확대는 지지하나 서구와 대립에는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2일(현지시간) 오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의 지도자 세션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단상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포럼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나렌드리 모디 인도 총리,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딜마 호세프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의장 겸 전 브라질 대통령이 참석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예고 없이 참석하지 않았다. 트위터 캡쳐

모디 印 총리, 브릭스 조용한 승자 되나


한편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중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이어가며 ‘조용한 승자’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23일(현지시간) 인도 현지 언론인 더타임스오브인디아 등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전날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에 참가해 “인도는 곧 5조 달러 규모의 경제가 될 것”이라며 “2047년까지 선진국으로 만들고 세계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는 목표와 실행 시점 등 체계적인 타임라인을 구성해 과업을 완성하는 이른바 ‘mission mode(임수완수) 개혁’을 통해 인도 정부가 앞장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팬데믹 등 전염병을 겪으며 ‘세계의 공장’인 아시아의 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깨닫게 됐다”며 “탄력적·포용적 공급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해 글로벌 차원에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중국 의존도 완화를 통해 경제 탄력성, 안보를 효과적으로 꾀하겠다는 미국의 ‘디리스킹’ ‘다변화’ 전략과도 맥이 닿아 있는 발언이다.
22일 시진핑(오른쪽 두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남아공 프리토리아의 대통령 집무실인 유니온 빌딩에서 거행된 국빈 환영행사에서 시릴 라마포사(오른쪽) 남아공 대통령의 안내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習 “‘자유 vs 독재’ 대립은 문명 충돌 부를 것”


시진핑 주석은 모디 총리와 달리 날선 발언으로 미국을 견제했다. “각국 인민이 바라는 것은 ‘신냉전’이 아니고 ‘소집단’도 아니라 오랜 평화이자 보편적이고 안전한 세계”라며 “‘민주와 권위’, ‘자유와 독재’라는 이원 대립은 세계를 분열시키고 문명의 충돌을 조성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국은 헤게모니 유전자가 없고, 대국 게임을 하려는 충동이 없다”며 “역사의 정확한 쪽에 굳게 서서,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된다(大道之行 天下爲公)’를 신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 전날 브릭스 포럼 돌연 불참


한편 시 주석이 전날 오후 참석 예정이던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에 예고없이 불참하면서 각종 억측이 퍼지는 등 해프닝이 발생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3일 지난 3월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 이후 다섯달 만에 올해 들어 두 번째 해외 순방에 나선 시 주석이 예정된 연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중국 관찰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촉발했다고 보도했다.

포럼 현장에 있던 한 인도 특파원은 “행사가 한 시간 지연됐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고, 보니 글레이저 독일 마셜 펀드의 인·태 프로그램 디렉터는 트위터에 “뭔가 잘못됐다(amiss)”며 시 주석 이상설을 제기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더 나아가 전날 중국 중앙방송(CC-TV)이 시 주석이 전용기에서 탑승교를 내려오며 좌우로 흔들리는 듯한 장면을 편집해 내보내지 않았고, 이날 거행된 국빈 환영행사와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의 안색이 초췌하고 눈동자를 심하게 깜빡이는 장면을 포착한 네티즌의 지적이 있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포럼 연설을 건너뛴 시 주석이 이후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인도·브라질 정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위해 마련한 만찬에는 참석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하면서 이상설이 불식됐다. 23일(현지시간) 시 주석은 브릭스 정상회담 공식 환영식에 첫 번째로 입장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김민정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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