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지는 정관수술… 미혼 남성까지 비뇨의학과 찾는 이유
◇정관수술, 아이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
젊은 남성들이 왜 정관 수술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고양시에 사는 회사원 A씨(33, 익명 요구)는 “결혼 이후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정관수술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아이가 생기고 부모가 됐을 때 감당해야 할 양육비, 한국의 교육 환경, 미래에 대한 불안정함 등을 생각하면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혼인 친구들을 만나봐도 정관수술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고 했다. A씨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강남의 유명 비뇨기과를 방문해 내달 정관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광명시에 사는 자영업자 B씨(34, 익명 요구)는 “강남에서도 요즘 아이를 두 명 낳으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있다”며 “신혼집 마련조차 힘든 상황에서 정관수술은 자유로운 성생활을 위한 단순 피임보단 한국 사회에서 2세를 낳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B씨 역시 빠른 시일 내 정관수술을 받을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처럼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정관수술로 이어지고 있는 것. 고려대 사회학과 김진영 교수는 “불안정한 미래 고용과 경제적 불안감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질 수 있고, 아이를 키우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젊은 층의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적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는 부부나 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PIR 지수만 봐도 알 수 있다. PIR은 연소득(중위소득 가구)을 모두 모아 주택(중간 가격대인 3분위 집)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PIR이 10점이라면. 1년 동안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동안 모아야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월평균 전국 PIR 지수는 6.8배로 전년(6.9배) 대비 줄었다. 상승세가 꺾였다 하더라도 평생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은 사람은 없고, 여전히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중고는 지속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PIR 수치가 비정상적인 수준이며, 이로 인해 결혼, 출산 등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자신의 고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심리
심리적인 영향도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정관수술을 하기까지는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우리 아이가 견뎌야 할 것들,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자신의 자녀에게도 또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심리들이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특히 사교육비 또한 너무 많이 드는 것도 이런 생각들을 갖게 한다”며 “부모들 사이에서는 유치원부터 잘 가야 대학까지 무사히 잘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강남 대치동만 가더라도 사교육을 통해 초등학교 5학년이 고2 수학을 선행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고, 이런 분위기들이 유지되다 보면 출산에 대한 의지를 접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가족, 피임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정관수술 증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부모-자녀)이 허물어지다보니, 정관수술 등 피임을 통해 아이를 갖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관수술, 풀면 임신된다는 생각은 큰 착오”
한편, 정관수술은 신중해야 한다. 영구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 정관수술을 임시 피임법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 시간이 워낙에 짧고, 조그만 구멍을 통해 수술하기 때문에 수술 상처나 흔적도 잘 남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정관 수술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윤철용 원장은 “흔히들 ‘묶은 걸 풀면 언제든지 수술 이전의 상태로 복구된다’고 생각하는데, 큰 착오”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물론 수술 전 상태로 복구시키는 정관 복원수술이 있고, 복원 수술을 하면 정관의 통로가 다시 이어지는 비율은 90%가 넘어가지만 임신율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서 “복원 수술 후 평균 7년이 지났을 때 임신이 가능할 정도로 정액이 나오는 비율은 최소 40%, 최대 70%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정관 수술받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임신 성공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정관 복원 수술을 했다면 의사들은 무조건 1년 이내에 임신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윤 원장은 “정관수술은 영구적인 피임법이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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