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지는 정관수술… 미혼 남성까지 비뇨의학과 찾는 이유

이채리 기자 2023. 8. 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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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정관수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최근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정관수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관수술은 음낭 주변의 정관을 절개하는 수술로, 남성 대표적인 피임 방법이다. 수술 시간은 10분 내외로 비교적 간단하다. 실제로 비뇨의학과에는 정관수술을 하겠다고 찾아온 젊은 남성들이 늘고 있다. 칸비뇨기과의학과 윤철용 대표원장은 “정관수술을 위해 내원하는 남성의 수가 과거에 비해 확연히 늘어났고, 연령대도 낮아졌다”며 “과거에는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반인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30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많이 하향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윤 원장은 “자녀 유무를 떠나 미혼인 사람도 정관수술을 하겠다고 찾아오기도 한다”며 “확실히 정관수술 트렌드가 변화했다”고 말했다.

◇정관수술, 아이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
젊은 남성들이 왜 정관 수술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고양시에 사는 회사원 A씨(33, 익명 요구)는 “결혼 이후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정관수술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아이가 생기고 부모가 됐을 때 감당해야 할 양육비, 한국의 교육 환경, 미래에 대한 불안정함 등을 생각하면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혼인 친구들을 만나봐도 정관수술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고 했다. A씨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강남의 유명 비뇨기과를 방문해 내달 정관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광명시에 사는 자영업자 B씨(34, 익명 요구)는 “강남에서도 요즘 아이를 두 명 낳으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있다”며 “신혼집 마련조차 힘든 상황에서 정관수술은 자유로운 성생활을 위한 단순 피임보단 한국 사회에서 2세를 낳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B씨 역시 빠른 시일 내 정관수술을 받을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처럼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정관수술로 이어지고 있는 것. 고려대 사회학과 김진영 교수는 “불안정한 미래 고용과 경제적 불안감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질 수 있고, 아이를 키우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젊은 층의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적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는 부부나 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PIR 지수만 봐도 알 수 있다. PIR은 연소득(중위소득 가구)을 모두 모아 주택(중간 가격대인 3분위 집)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PIR이 10점이라면. 1년 동안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동안 모아야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월평균 전국 PIR 지수는 6.8배로 전년(6.9배) 대비 줄었다. 상승세가 꺾였다 하더라도 평생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은 사람은 없고, 여전히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중고는 지속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PIR 수치가 비정상적인 수준이며, 이로 인해 결혼, 출산 등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자신의 고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심리
심리적인 영향도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정관수술을 하기까지는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우리 아이가 견뎌야 할 것들,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자신의 자녀에게도 또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심리들이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특히 사교육비 또한 너무 많이 드는 것도 이런 생각들을 갖게 한다”며 “부모들 사이에서는 유치원부터 잘 가야 대학까지 무사히 잘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강남 대치동만 가더라도 사교육을 통해 초등학교 5학년이 고2 수학을 선행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고, 이런 분위기들이 유지되다 보면 출산에 대한 의지를 접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가족, 피임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정관수술 증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부모-자녀)이 허물어지다보니, 정관수술 등 피임을 통해 아이를 갖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관수술, 풀면 임신된다는 생각은 큰 착오”
한편, 정관수술은 신중해야 한다. 영구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 정관수술을 임시 피임법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 시간이 워낙에 짧고, 조그만 구멍을 통해 수술하기 때문에 수술 상처나 흔적도 잘 남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정관 수술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윤철용 원장은 “흔히들 ‘묶은 걸 풀면 언제든지 수술 이전의 상태로 복구된다’고 생각하는데, 큰 착오”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물론 수술 전 상태로 복구시키는 정관 복원수술이 있고, 복원 수술을 하면 정관의 통로가 다시 이어지는 비율은 90%가 넘어가지만 임신율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서 “복원 수술 후 평균 7년이 지났을 때  임신이 가능할 정도로 정액이 나오는 비율은 최소 40%, 최대 70%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정관 수술받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임신 성공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정관 복원 수술을 했다면 의사들은 무조건 1년 이내에 임신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윤 원장은  “정관수술은 영구적인 피임법이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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