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경 부활' 카드 꺼낸 정부…"軍도 부족한데, 국방부 동의했나"
“현실성이 낮고 근본 대책도 아니다. 이민자라도 대거 받을 건가.”(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군 병력도 부족한데, 국방부 장관이 동의는 했을지 모르겠다.”(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정부가 23일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에 대응 방안으로 의무경찰(의경) 부활 카드를 꺼내든 것을 두고 전문가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상동기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담화문’을 통해 의경 재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경은 1982년 전투경찰대 설치법 개정에 따라 신설, 집회ㆍ시위 현장 등에 주로 투입되며 경찰의 치안 업무를 보조해왔다. 그러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단계적 폐지 결정을 내리며 매년 20%씩 모집인원을 줄였고, 지난 4월 마지막 기수(1142기) 전역식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불과 4개월만에 다시 폐지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정부가 밝힌 명분은 ‘범죄예방 역량 강화’다. 실제 의경을 두고 현장에서 ‘걸어다니는 셉테드(CPTEDㆍ범죄예방환경설계)’란 말을 할만큼 가시적인 효과가 있다는 평이 있다. 또 일선 경찰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 다른 치안 업무나 수사에 경찰력 투입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경기남부청 소속 한 수사관은 “인력이 너무 부족하고 업무도 과중한데 의경이 부활하면 직원들은 대환영이다. 의경이 순찰 등 눈에 보이는 업무를 해주면 기동대 인력도 수사 인력으로 보강해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담화문 발표에 함께한 윤희근 경찰청장 역시 “신림역이나 서현역 범죄의 경우 다중운집장소에서의 무차별 범죄 유형인데 거기 경력을 집중 운영하다보니 최근 산책로에서 범죄가 일어났다. 기존에 저희가 가진 경찰력만 가지고 전체를 다 커버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의무경찰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그대로 남아있어 법률 개정도 필요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박한 평가를 내렸다. 우선 현실성 측면에서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의경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엔 적정 군 병력 수준을 유지에 필요한 인구보다 입영 인구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고, 다시 폐지가 된 건 병력 충원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어떻게 인원을 확보할지 구체적 방안이 있는지 모르겠다. 일반 경찰보다 저비용으로 쓸수 있는 효율성 때문에 경찰이야 편하겠지만, 무리수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21년 감사원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성과분석 감사보고서’는 병역의무자가 2020년 33만여명에서 2025년 22만여명으로 줄고, 2039년엔 15만여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방부도 군 병력이 향후 10년안에 최소 필요병력(30만명) 이하로 떨어질 걸로 전망한다.
경찰이 우선 내놓은 답은 ‘기존보다 적게 뽑겠다’는 것이다. 윤 청장은 “4~5년 전에 의경이 2만5000명까지 있었다. 그때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속대응팀 인원으로 3500명 정도, 주요 대도시를 거점으로 기존 방범순찰대에 가까운 인력 4000명 정도까지 약 7500~8000명의 인력을 순차적으로 채용해 운영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 7~8개월이 소요될 걸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경을 부활시켜도 규모는 폐지 전에 비해 최대 3분의 1수준까지만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폐지 결정을 뒤집고도 정작 정책적 실효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정급 경찰 간부는 “의경 부활은 결국 눈에 보이는 수를 늘리고 경찰력을 과시해서 범죄의지를 꺾겠다는건데, 전문성이 없는 인력을 최소한 뽑아 쓰는 것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 확보에 성공하더라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최종술 동의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왜 폐지했는지 이유를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경험이 적고 업무 처리가 미숙할 수밖에 없는 의경들을 대시민 업무에 많이 투입했을 때 시민들의 원성도 높았고, 경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해 결국 치안 보조 인력으로만 활용했다”며 “인력 보강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전문성과 책임감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정용 동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치안 인력을 늘리는 게 고육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거리에서 일어나는 단순 범죄라면 모를까 지금 문제가 되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책이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의경 부활과 함께 발표한 경찰 조직 재편 방침이 수사 역량 강화 문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경찰 업무의 무게 중심을 치안에 두고 조직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수사 역량 강화에 필요한 동력과 자원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황 교수는 “언제까지 인력을 치안에 집중하고, 특공대와 장갑차를 길거리에 배치할 순 없다”며 “다른 수사영역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수사권 조정 이후 꾸준히 수사 인력 확보와 역량 강화 문제에 경찰의 운명이 달렸다고 강조했는데 이번엔 치안에 ‘몰빵’하겠다고 하니 혼란스럽다”며 “경찰 조직 운영에 일관성이나 원칙 같은 게 있긴 한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윤정민ㆍ장서윤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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