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대팰' 집주인 7억 돌려줬다…서울 갱신계약 41%가 역전세

김원 2023. 8. 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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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은평구의 신축아파트를 소유한 강모씨는 지난 6월 기존 세입자와 전세 재계약을 맺으면서 신용대출을 받아 1억원을 돌려줬다. 2년 전 7억원에 계약했지만, 시세 하락으로 1억원 깎인 6억원에 계약 갱신을 한 것이다.

올해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 재계약을 체결한 집주인 열 명 중 4명 이상이 강씨처럼 2년 전 계약 때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역(逆)전세’로 보증금 일부를 세입자에게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올해 1월부터 지난 22일까지의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9만7467건)을 분석한 결과다.

전체 전세 계약 가운데 기존 세입자와 재계약한 갱신계약은 2만7382건(28.1%)인데, 갱신계약의 40.9%(1만1212건)는 2년 전보다 낮은 가격에 재계약하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 일부를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보증금 반환액은 평균 1억1959만원, 총액은 1조3408억원이었다.

차준홍 기자

세입자에 5억 넘게 돌려준 집주인 86명

갱신계약의 역전세 비중은 지난 1월 32.6%(3595건 중 1172건)를 기록한 뒤 꾸준히 증가해 7월에는 45.4%(3202건 중 1453건)까지 치솟았다. 다만 이달 들어 역전세 비중은 43.7%(1404건 중 614건)로 다소 줄었다. 최근 전셋값이 상승 전환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동작구의 역전세 비중이 50.1%로 가장 높았다. 은평구(46.9%), 서초구(46.9%), 강남구(45.5%)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에서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 속하는 도봉구(35.9%), 중랑구(33.9%), 노원구(30.8%) 등은 역전세난이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구별 평균 보증금 반환액은 강남구가 1억8993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서초구(1억8692만원), 송파구(1억5420만원), 용산구(1억4034만원) 등의 순이었다.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1억원 이상 반환한 갱신계약은 6224건이며, 3억원 이상은 609건, 5억원 이상은 86건이었다. 역전세로 인한 보증금 반환액이 5억원 이상으로 컸던 계약은 강남구(49건)와 서초구(28건) 등에 집중됐다.

박경민 기자


강남구 대치동 대치선경 전용 117.7㎡의 집주인은 2021년 5월 보증금 18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지만, 2년 뒤인 올해 5월 11억원에 계약을 갱신하며 세입자에게 7억5000만원을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의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151.27㎡ 소유주도 기존 36억원보다 7억원 낮은 29억원에 갱신계약을 맺으며 보증금 차액을 세입자에게 반환했다.


올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9.99% 상승

역전세난에 따른 혼란은 크지 않다. 서초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서초 지역의 경우 전셋값이 2년 전에 비해 크게 떨어져 역전세에 대한 집주인들의 걱정이 컸다”면서도 “세입자와 집주인이 재계약 금액을 두고 갈등을 보인 사례가 일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재계약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잠실의 공인중개사도 “보증금 차액을 반환할만한 현금이 없는 집주인은 올 초에 집을 싼값에 팔았거나, 신용대출 등으로 돈을 마련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역전세난은 일반적으로 매매 가격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 매수)를 한 임대인이 역전세로 인한 전셋값 차액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실상 집을 처분하는 수밖에 없다. 급하게 집을 매도하려는 집주인이 늘어날수록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패닉셀(투매)’이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 5월 “역전세에 따른 보증금 상환 부담은 매물 증가로 이어져 매매가격에 대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하지만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에선 급매물 사라지고 오히려 가격 반등 폭이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한 달 전보다 2.02% 상승했다.

지난 2월(2.1%)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로 지난해 12월보다는 9.99% 올랐다. 전세수요가 늘면서 전셋값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5월 4주차에 0.01% 오른 뒤 지난주까지 13주 연속 상승세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부동산 시장에서 매맷값과 전셋값은 동행하는 흐름을 보인다”며 “매맷값이 바닥을 찍고 반등하면서 전셋값도 따라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집주인-세입자 늘어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셋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세입자도 새 전셋집을 구하기보다 집주인과 타협을 통해 적정한 가격에 재계약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실제 갱신계약 비중도 늘고 있다. 비용을 들여 이사하는 것보다 재계약을 선택하는 임차인이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 3월 전체 전세계약 가운데 갱신계약 비중은 25.3%에 불과했지만, 지난달에는 31.8%까지 올랐다. 정부가 역전세난 해결을 위해 최근 집주인에 대해 전세보증금반환 대출 기준을 총부채상환비율(DTI) 60%로 완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정부의 규제 완화 등으로 전세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집주인들의 역전세에 대한 부담도 사라지고 있다”며 “내년에는 입주물량이 크게 줄기 때문에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다시 강세로 돌아갈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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