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5평에 갇힌 삶, '구경거리'는 계속돼야 하나요?
[양성현 기자]
나는 자타공인 집순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긴 시간 어울리는 것은 힘에 부친다. 집에서 혼자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에너지를 채우는 방식이다. 재택근무로 사회적 교류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이런 나도 집에만 있는 것이 힘들어서 안절부절못한 때가 있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는 완전히 고립됐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수시로 친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갈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 와중에 체육관마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거렸다. 덕분에, 내가 자발적 집순이일 수 있던 것은 운동 덕택도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운동도, 사람들과의 교류도 제거하자, 점점 내 몸도 마음도 내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삶의 만족도는 뚝뚝 떨어졌다. 매일 산책을 한 뒤에서야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다.
▲ 지난 8월 14일 오전 7시 24분께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한 사설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가 살았던 우리 모습. |
ⓒ 연합뉴스 |
인간이고, 집에서 책 보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로 여기는 나도 이럴진대, 야생동물은 어떨까. 그들을 가둬 놓는다면.
지난 8월 14일, 경북 고령의 한 농장에서 암사자 '사순이'가 탈출했다.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고 농장에서 약 20미터 떨어진 수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인명 피해를 우려해 사살됐다. 탈출한 지 1시간 10분 만의 일이다.
사순이가 살았던 곳은 넓이 14㎡. 겨우 4.235평. 어려운 이론을 대입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숨이 막히고 답답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매일 밖을 산책하거나 실컷 뛰놀 수 있었을까? 그럴 순 없었을 것이다. 사순이는 그곳에서 20여 년 간을 살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야생동물의 탈출과 포획과정에서의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18년에도 대전오월드에서 퓨마가 탈출했다가 사살당했고, 얼마 전인 지난 11일에도 대구 달성공원에서 침팬지가 탈출해 마취총을 사용했다가 결국 기도가 막혀 사망했다.
지난 2005년, 야생동식물보호법이 제정돼 국제적 멸종 위기종은 그후로 사육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사순이는 그 전에 국내로 반입돼 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지만 사순이를 끝으로 농장에서 사육되는 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국제적 멸종 위기종의 경우일 뿐, 전국의 동물농장에서는 여전히 늑대와 하이에나, 코끼리가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꼭 야생동물을 어렵게 반입해 와서 인위적으로 사육해야 하는지도 궁금해진다.
▲ 캥거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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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존재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어떤 때는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가급적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인간의 자격이 아닐까. 야생동물을 좁은 우리에 억지로 가두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 폭력일 것이다.
다행인지, 동물원수족관법이 개정돼 올해 12월부터는 동물원 허가제가 도입된다고 한다. 나로서는 이제까지 동물원이 허가 없이도 운영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지만, 앞으로는 본래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과 적절한 사육조건이 갖춰져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길 바라본다. '동물권 행동 카라'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수용해 보호하고 우리의 과오가 후대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시설이자 교육시설인 '생츄어리(Sanctuary)'로의 전환이 논의돼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야생동물의 삶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면 탈출하고 싶은 감옥이 아니라, 살고 싶은 환경을 내어줘야 한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됐을 때, 흔히 '동물원 구경거리가 됐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과연 동물은 구경거리로 소비돼야 하는 존재일까. 그들 또한 존엄한 생명이다. 사순이의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억울한 죽음으로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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