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폭염에도 긴팔·긴바지... "진통제 먹으면서 버텨요"

김혜빈 2023. 8. 2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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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폭염생존기]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가스안전점검원의 하루

[김혜빈]

▲ 가스안전점검 현장의 모습 지난 7월 환경정의가 만난 김윤숙 서울도시가스지회 분회장의 모습. 37도를 육박했던 폭염 현장에서 긴팔과 모자,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하고 있다.
ⓒ 환경정의
 
'힘들면 그만둬도 돼. 일할 사람은 많아.'

가스안전점검원 김윤숙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 분회장이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그러나 환경정의 활동가가 노동 현장에서 만난 가스안전점검원은 폭염 속에서도 쉴 수 없었다.

검침노동으로 불리는 가스안전점검은 '간주근로'다. '간주근로'는 실제 근로한 시간과 관계없이 '소정근로시간',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한 시간' 등을 근로시간으로 간주하는 노동이다. 그래서 처음에 김윤숙 분회장은 '간주근로'를 장점으로 여겼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면 은행 보거나 아이들 키울 때, 학교에서 부르거나, 병원 갈 때 시간을 쓸 수 있다고 해요. 저도 처음에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아이들도 보살피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업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가스안전점검원은 가스 누출이나 설치,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가스계량기를 확인하여 고지서를 송달하는 업무를 한다. 가스안전점검원 1인 당 적게는 3600세대에서 많게는 5000세대를 6개월 안에 전부 방문해 60개의 부적합 항목이 있는지 점검을 해야 하고, 한 달에 3번 있는 납기기간에 맞춰 3600세대에서 5000세대의 가스계량기를 검침한 뒤 고지서를 뽑아 직접 우편함에 끼워 넣는 송달업무까지 진행해야한다.

가스안전점검부터 검침, 고지서 송달 업무까지 할당된 세대 수를 다 방문하고 주어진 일을 끝내려면 하루에 100세대는 가야한다. 그나마도 40~45 세대만이 가스안점점검을 위해 문을 열어준다. 맡은 세대 수 자체가 많다보니 고객과의 시간 조율도 불가능하다. 고객의 요청에 맞추려면 품이 더 들고 이동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폭염 때나 장마에는 중간에 잠깐 일을 쉬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저녁 7시고, 9시고 지연돼서 일하는 거예요."

37℃, 폭염경보에도 긴팔과 긴바지에 마스크까지 착용
 
▲ 현장동행 당시 온도 및 습도 지난 7월 오후 3시경, 환경정의가 동행했단 은평구 증산로 일대 가스검침현장 온도는 37도였다.
ⓒ 환경정의
 
지난 7월 28일 환경정의가 증산로 일대에서 김윤숙 분회장과 함께 동행한 날도 바깥 기온은 37℃를 기록했다. 폭염경보가 발령됐지만 그는 긴팔과 긴바지,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폭염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졌다.

"예전 폭염은 해가 뜨겁고 아스팔트 지열이 올라와서 헉헉거리게 만들었다면, 요즘 폭염은 땀이 진득진득하게 나요. 습도도 높다보니 옷이 (몸에) 휘감겨서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갈수록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김윤숙 분회장의 동료들도 추운 겨울보다 여름의 폭염이 더 싫다고 한다. 물, 그늘, 휴식을 강조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온열질환 예방가이드라인은 가스안전점검원의 업무량과 업무의 특징을 생각하면 '그림의 떡'이다. 100세대를 다 돌려면 쉬는 시간은 없다. 방문해도 된다는 고객들의 문자도 언제 올지 모른다. 하루 1만 7천보를 걷는 현장에서는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다.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하잖아요? 그런데 길거리에 공중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고객님 집에서 화장실을 잠깐 써도 될지 묻는 것도 좀 꺼려져요. 어쨌든 일하러 온 곳이잖아요. 남의 집이고. 가끔 나이 지긋한 어르신 댁에서 화장실 좀 써도 되는지 묻는 정도죠. 그래서 물을 덜 먹어요."

김윤숙 분회장은 방광염에 걸리는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폭염에 오래 노출되어 생기는 어지럼증도 고질병 중 하나다.

"여름에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텨요. 계속 어지럽죠."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급하게 다니다가 넘어지거나 계단에서 굴러 다치기도 한다. 

"서울시가스안전점검원 규정에 보면, 점검원 1인당 가스안전점검 업무 단독 주택은 3천 세대, 공동 아파트는 4천 세대를 맡게 돼 있어요. 그런데다가 고지서를 우편함에 꽂고 검침까지 같이 해요. 규정된 업무보다 더 많이 하는 거죠."

고지서 꾸러미 이고 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져
 
▲ 가스검침업무를 위해 좁은 곳을 들어가는 모습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가스 계량기를 보기 위해 골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 골목 사이를 지나다 팔이 긁히기도 하고 죽은 쥐, 쓰레기를 밟기도 한다.
ⓒ 환경정의
 
한달에 3번 고지서 꾸러미를 이고 지고, 매일 1kg 정도 되는 단말기와 검침안내문을 들고 걷다보면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어지럽다. 김윤숙 분회장은 서울시가스안전점검원 규정대로만 해도 훨씬 안전할 것이라 말한다.

"점검도 더 꼼꼼하게 잘 할 수 있어요. 점검은 1년에 2회씩 한 가정을 방문하지만 가스 계랑기를 검침하고 기록한 다음, 고지서를 송달하는 일은 달마다 적어도 3600세대를 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실제 업무에서 안전을 점검하는 비중이 적어질 수밖에 없죠. 일이 많다 보면 점검해야할 60개 항목을 제대로 못보고 나갈 때가 있어요. 17년 동안 일한 저도 '시민 안전을 책임지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할 때가 있는데 일이 익숙하지 않은 신입들은 오죽하겠어요?"

이런 사정을 고려해 지난 2020년 서울시는 '서울시 도시가스 공급규정'에 폭염기 검침 업무에 한해 격월 실시 권고 규정을 만들었다. 제 16조 (검침)에 '주택용의 경우 취사전용과 하절기(6월~9월) 난방용은 격월로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서울시 도시가스 공급사 중 하나인 서울도시가스가 2022년부터 갑자기 격월검침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시의 격월 실시 권고 규정은 권고이지 의무 규정이 아니라는 이유다. 올해는 다행히 서울도시가스노조의 요구로 격월검침이 시행됐다.
  
김윤숙 분회장은 폭염 속에 일하는 가스안전점검원의 현장을 봐달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폭염시기라고 편의점 쿠폰을 줬어요. 그런데 편의점은 화장실이 없잖아요? 같은 가격으로 카페 쿠폰을 주면 카페 화장실도 이용하고 잠깐 앉아 쉴 수 있어요. 그리고 폭염에 땀 흘리는 걸 고려해서 조끼도 한 장 더 지급했으면 좋겠어요. 조끼 하나로는 매일 빨아 입기 힘들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한 번 더 당부했다.

"이 더운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30분만 있어보면 알 거예요. 얼마나 숨이 막히는지. 그 상황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괜찮은 게 아니에요. 친절하게 고객을 대하려고 최대한 힘든 것 숨기고 추스르면서 일하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가스안전점검원이 시원한 곳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수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해 과도하게 주어진 할당량을 줄이는 등 실질적인 폭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 김윤숙 서울도시가스지부 분회장 김윤숙 민주노총 서울도시가스지부 분회장은 이날 가스안전점검원의 어려움을 실토하며 가스안전점검원을 위한 폭염 안전 대책을 촉구했다.
ⓒ 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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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환경정의 기후팀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환경정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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