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자 속출 추일승호, 항저우 아시안게임 '빨간불'
[이준목 기자]
오는 9월 열리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는 농구대표팀 '추일승호'가 연이은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속출하는 부상 선수들로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 못한 상황에서, 농구협회의 열악한 지원문제까지 겹치며 대회 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 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대표팀이지만, 현재로서는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8월 23일 남자농구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열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국가대표 명단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문성곤(KT)이 발목 통증으로 하차하게 되면서 양홍석(LG)이 새롭게 가세했다.
지난 FA시장에서 양홍석과 문성곤의 묘한 인연이 주목받았다. FA자격을 얻은 양홍석이 LG로 이적했고 원소속팀이었던 KT는 문성곤을 영입하여 빈 자리를 메운 바 있다. 이번에는 대표팀에서 문성곤의 빈 자리를 양홍석이 메우는 구도가 됐다.
'제2의 양희종'으로 불리우는 문성곤은 KBL 역사상 최초로 4년연속 최우수 수비상(2020-23)을 석권한 국내 최고의 수비형 포워드로 꼽힌다. 이번 추일승호에서도 7월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하는 등, 사실상 포워드진의 핵심으로 중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중요한 대회마다 번번이 부상으로 낙마했던 문성곤은, 이번에도 끝내 발목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며 아시안게임과는 인연이 없다는 징크스를 되풀이했다.
대체자로 발탁된 양홍석은 신체조건(195cm)에서 문성곤과 거의 비슷하고 국제대회 경험도 풍부하다. 추일승호에도 지난해 열린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기에 익숙하다. 추일승 감독이 양홍석을 대체자로 선택한 것도,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않은 상황에서 유경험자의 빠른 적응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홍석은 추일승호에서 크게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양홍석은 지난해 아시아컵에서 4경기 평균 1.5점 1.8리바운드에 그쳤고 빅매치나 중요한 순간에는 거의 기용되지 못했다. 지난 7월 일본과의 평가전 명단에서는 아예 탈락했다.
추일승호의 색깔이자 장점은 '빅포워드 농구'였다. 추일승 감독은 프로와 대표팀에서 모두 높이와 운동능력을 갖춘 장신 스윙맨들을 활용하여 변화무쌍한 전술적 조합을 선보인 바 있다.
한국농구는 최근 여준석-이현중-양재민-최준용 등 2미터 내외의 신장에 다재다능함을 겸비한 포워드 자원들을 대거 배출했다. 이들이 모두 정상적인 컨디션에서 가세했다면 대표팀은 아시아에서는 어떤 팀을 상대로도 해볼 만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상-해외진출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합류가 불발되면서, 지난해 아시아컵과 비교해도 대표팀의 전력은 크게 약화됐다.
이번 대표팀에서 국제대회 기준으로 장신 스윙맨이라고 할만한 포워드는 송교창 한 명만 남았다. 여기에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송교창을 보좌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문성곤마저 낙마하면서 포워드진의 뎁스는 더욱 얕아졌다.
몇 달전만 해도 평가전 명단에서조차 탈락하며 포워드진 후순위에 불과했던 양홍석이 졸지에 유력한 주전 3번을 맡아야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대표팀의 유일한 대학생 선수인 문정현은 경험이 부족하다. 사실상 이제 포워드진은 더 이상 추일승호의 강점이라고 평가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대표팀은 이미 베테랑 빅맨 오세근이 부상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이 좌절되는 악재를 겪은 바 있다. 김선형-김종규와 함께 2014 아시안게임 우승 멤버이자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을 자랑하던 오세근은 대표팀에 부족한 노련미를 더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역시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만큼 대표팀의 골밑을 책임져야 할 라건아, 하윤기, 이승현, 김종규 등 기존 빅맨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이런저런 전력누수만으로도 골치아픈 대표팀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협회의 부족한 지원과 부실한 대회 준비다. 원래 농구대표팀은 이달 12일부터 시리아에서 열리는 FIBA 올림픽 사전 예선 대회에 나갈 예정이었다. 8개국이 출전하는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파리 올림픽 최종 예선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리아가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돼있는 상황에서 농구협회는 고심 끝에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농구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안전 문제를 고려할 때 대회 출전을 포기한 것 자체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정작 그 이후의 대책이나 후속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본래 농구대표팀의 계획은 올림픽 사전예선대회를 통하여 아시안게임까지 경기감각도 유지하고 전술과 팀워크를 다듬는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사전예선에 불참하면서 8월 이후 농구대표팀의 스케줄은 그대로 공백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시안게임이 불과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농구대표팀은 국내에서 프로팀-상무와의 연습경기 일정만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5일에는 가스공사 1.5군이 공개 연습경기에서 대표팀을 격파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대표팀은 소집 이후 7월 열린 일본과의 국내 평가전 2연전이 지금까지 유일한 A매치였다. 아시안게임 전까지 별다른 해외 전지훈련이나 평가전 스케줄은 잡혀있지 않다.
국제대회와는 경기 환경이나 스타일이 전혀 다른 국내 프로-아마추어 팀들과의 연습경기가 농구대표팀의 전력 강화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사전예선 불참 때문에 일정이 꼬였다고 하지만, 미리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도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협회의 대처가 무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이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의 경우, 홈에서 열리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대표팀에 나름대로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 당시 유재학 감독이 이끌던 농구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직전에 열린 농구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실전 감각과 국제경험을 쌓은 바 있다(비록 결과는 전패였다).
현재의 대표팀은 선수들만 소집해놓고 향후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한국농구가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걱정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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