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택배차량 갈등, 택배기사가 되어 보니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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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기자]
▲ 택배 없는 날인 지난 14일 서울에 위치한 한 택배 터미널 컨베이어벨트가 멈춰 있다. 택배 없는 날은 택배기사들이 징검다리 연휴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자 2020년 고용노동부 등과 합의해 도입한 제도다. 통상 광복절 휴일을 앞둔 8월 13일 또는 14일로 지정·운영돼왔다. |
ⓒ 연합뉴스 |
우선 우리 대리점 기사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담당하는 서울 구로 지역은 대개 오래된 주거지가 많고 새 아파트라 해도 그곳만 도드라지게 지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택배기사 입장에서 우리가 그런 지역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논란은 거의 비슷하다. 아파트 주민 의견은 이렇다. '아파트 자체가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지상 주차장 없이 건설되었다. 그래서 주민들 모두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지상 도로는 보행자 전용이다. 주민들이 운동하거나 아이들이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다. 그런데 유독 택배 차량만 들어오게 되면 그 흐름이 끊어지고 위험하기도 하다. 실제 택배 차량은 제한속도 10km를 지키지도 않는다.'
기사를 보니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2002~2003년 경기도 광주의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곳이 그랬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도로가 있었고 모든 차량은 지하로 들어갔다. 우리도 차를 피할 염려 없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는 게 매우 만족스러웠다. 택배 차량은 어떻게 배송했는지, 그때는 관심이 없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정확하지는 않으나 어렴풋이 택배 차량은 지상에 주차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의 도로와 교통 체계가 보행자보다 지나치게 차량 위주로 설계되고 운영되는 것이 불만인 사람이다. 몇 해 전 일반도로 제한속도를 50km로 하고 어린이보호구역은 30km로 제한한 것을 크게 환영한다. 누구나 운전할 때는 속력을 내고 싶은 운전자였다가, 걸어 다닐 때는 차량에 신경 쓰는 보행자의 처지가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석에 앉으면 우회전 횡단보도는 신호등 무시하고 대충 지나가고 제한속도는 늘 무시하기 일쑤였다. 특히 횡단보도 앞 주차선을 무시하고 그 안까지 들어와 차를 세우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인사 사고가 빈발하고 특히 민첩성과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곤 했다. 나 자신도 운전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보행자 우선의 교통과 도로 체계 변경은 적극 지지한다.
▲ 지난 5월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가 쌓여 있다. 이 아파트 입주자들은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달라는 입장이지만, 택배 기사들은 배송 차량(탑차) 높이 탓에 주차장 진입이 불가능하다며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
ⓒ 연합뉴스 |
어떤 아파트는 개조 비용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단다. 그러나 택배 기사인 나는 그것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왜냐하면 이전 글에도 썼지만, 택배 배송의 관건은 많은 물건을 얼마나 잘 쌓을 수 있는지와 얼마나 빨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물론 물건을 하자 없이 정확하게 배송하는 것은 기본전제다).
그만큼 택배 기사가 소화해야 할 하루 물량은 늘 탑재함을 꽉꽉 채울 만큼 많다. 그중에 배송량이 더 많은 기사는 대리점 집하장을 하루 두 번씩 오가거나 일부 물량을 다음날로 미루고 쌓아두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데 탑재함 높이를 낮추면 얼마나 많은 물량을 싣지 못하게 되는지 택배를 해본 사람은 벌써 머리에 그려진다.
기사들은 매일 두 번씩 왕복 한 시간 가까이 소모하며 다시 대리점에 다녀와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직장인 퇴근 시간을 피하기 어렵고 특히 배송 후 집화까지 하는 기사들은 시간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대충 생각해 봐도 적재함을 낮추는 것은 단지 개조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택배 기사들은 지상 도로를 이용하되 정한 제한속도를 정확히 지키고, 또 아파트 측에서 지정해 주는 공동 주차구역에만 주차하고 그 이후에는 수레를 이용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아파트 쪽에서 받지 않자 결국 정문 앞에 쌓아 놓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아파트 쪽에서도 집까지 배송하지 않은 물건을 일일이 사고로 신고하여 기사가 변상하도록 권하고 있다 한다. 이렇게 되면 양쪽 모두 자존심 때문에라도 굽힐 수 없고 불편함과 감정만 쌓여간다.
내 생각은 이렇다. 양쪽의 절충점을 찾되 아파트 쪽의 사정으로 생긴 일인 만큼, 그쪽에서 좀 더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택배 기사라서 거나 택배 기사가 수고하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지상 주차장을 없애고 지하 주차장만 이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배송 업무의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것을 일반 이용자도 아닌 물건 배달 기사에게 똑같이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것은 배달 기사가 각 배송지마다의 특수사정을 다 따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앞서 기사들이 요구한 것처럼 아파트 측에서 지정한 공동 주차구역만 이용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 아닐까 싶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몇 해 전 갈등이 생겼던 의정부 어느 아파트는 결국 아파트 지하 주차장 높이를 2.7m로 높임으로써 해결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내가 배송한 지역 가운데 한 건물이 그 건물 배송임에도 건물 앞 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건물 안 배송을 위해 물건을 수레에 옮기려 하니 소음이 크고 바닥이 긁힐 수 있다며 건물에서 주는 바퀴가 넓은 큰 수레로 다시 옮기라고 요구했다.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으려니 경비원은 건물 주인이 그렇게 요구하니 자기도 어쩔 수 없노라며 미안하지만 자기 좀 봐달라고 했다. 경비원도 '을'이고 나도 입씨름하기 귀찮아서, 그 건물 배송이 있을 때는 좀 힘들어도 내가 들고 오르내렸다.
▲ 한 대단지 아파트 정문 앞에 택배 차량이 주차돼 있다. |
ⓒ 박현광 |
우리 가족은 2004~2010년까지 경기도 광명의 주공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무렵 광명은 1980~90년대에 지어진 1세대 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였다. 어느새 우리 단지만 빼고 주변 단지 모두가 어려운 영어 이름들을 길게 이어 붙인(왜 이래야 할까?) '명품 아파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날 놀러 나갔던 초등학생 아들이 씩씩대며 들어왔다. 이유를 물으니 '주공' 대신 들어선 '명품' 놀이터에 함께 놀러 갔던 아이들이 '명품 주민'에게 쫓겨났다는 것이다. "아빠! 다른 아파트에 가서 놀면 안 돼?"
예전에 평수로 구분된 신분이 영구 임대와 민간 분양으로, 다시 명품의 이름으로 구분 짓고 각 아파트는 오직 입주민만의 차별화되고 단절된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와 비슷한 한국인의 자존심은 차로도 표현된다. 예전 티코로 대표되는 경차가 처음 나왔을 때 그랜저와 비교하며 만들어 낸 수많은 우스갯소리가 전형적인 한국인의 마음이다.
그 사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한국인의 차는 갈수록 크고 비싸졌고, 이제 경차나 소형차는 찾아보기 쉽지 않게 되었다. 안전 때문이라고? 일본인과 유럽 사람은 우리 못지않게 안전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만 타고 다니는 차는 우리보다 훨씬 작다.
아파트와 차 사랑을 폄하하거나 따지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혹시 우리가 더 소중히 여길 것을 놓쳐서 생기는 마음의 허함은 아닌지 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영화 <곡성>의 대사처럼 '뭣이 중한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언 4장 23, 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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