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죄의식이 담긴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김준모 기자]
▲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포스터 |
ⓒ 슈아픽처스 |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독일 나치의 전범, 아이히만 재판은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국가에 속한 공무원으로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 단 한 사람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았다며 결코 죄를 인정할 수 없다 주장했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속 볼코노고프는 아이히만과 달리 자신의 행위와 그 죄를 바라보며 영혼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1930년대, 당시 소련의 지배자 스탈린이 행한 대숙청 시대를 다룬 작품이다. 스탈린은 측근이 암살을 당하자 계엄령을 내리고 비밀경찰 조직 NKVD를 동원해 직접 수사에 나섰다. NKVD는 부족한 것보다 과한 것이 낫다는 일념 하에 1년 사이에 무려 최대 120만 명을 처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급 계층인 농민부터 고위 당직자까지 해당되었는데 당시 소련 공산당 당원 중 3분의 1이 숙청을 당했다고 한다.
▲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스틸컷 |
ⓒ 슈아픽처스 |
영화가 추구하는 건 영혼의 구원과 이를 위한 용서다. 이 환상과도 같은 목적을 위해 마술적 리얼리즘의 요소를 차용한다. 볼코노고프는 매장을 당한 동료가 땅을 파고 올라오는 모습을 본다. 이 동료는 볼코노고프의 내장을 쥐어 짜내며 공포심을 준다. 대위의 여정은 이 공포에서 시작된다. 끊임없이 돌을 옮겨야 하는 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포스처럼, 영겁의 고통을 지옥에서 겪을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볼코노고프는 동료에서 적이 된 NKVD의 추격 속에 거짓자백으로 목숨을 잃은 숙청자들의 가족을 찾아가 용서를 빈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 문학의 정취를 자아낸다. <죄와 벌> 등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보여준 죄의식과 영혼의 구원과 같은 키워드를 품은 인물이 볼코노고프이다. 초반 그의 모습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 속 인물들처럼 익살맞고 잔악한 무리의 일원이었다.
▲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스틸컷 |
ⓒ 슈아픽처스 |
아버지의 죽음 후 숙청자들의 시체와 함께 지내는 정신이 나간 여자,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당국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 여기고 거짓만 말하는 남자 등 따뜻한 포옹을 얻을 수 없는 이들과의 만남이 지속된다. 심지어 가장 순수한 존재인 어린아이에게도 볼코노고프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이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그 모든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스탈린 시대의 어둠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여정은 구원이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뼈아픈 여정일까. 볼코노고프에게는 <죄와 벌>의 소냐와 같은 확실한 구원의 상징은 없다. 다만 대위가 그토록 원했던 영혼을 찾았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작품의 제목은 일종의 맥거핀이자 의미의 심화를 가져온다. 볼코노고프는 그가 처한 어둠 속에서 육체적인 탈출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영혼이 지옥의 불구덩이를 향한 탈출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그 마침표에 실존이란 메시지를 둔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러시아 영화 특유의 어두운 감도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스릴러라는 장르의 힘에 기대어 대중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 6번 칸 >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유리 보리소프는 외적 상황과 내적 갈등을 묶은 원동력을 지닌 볼코노고프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강한 흡인력을 자아낸다. 이 영화가 말하는 구원과 영혼의 탈출은 피로 얼룩진 역사가 인류에게 반복되는 한, 시대를 타지 않는 생명력으로 오랜 사랑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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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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