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았을까
[김동근 기자]
▲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
ⓒ 유니버설 픽쳐스 |
우리는 다양한 결정을 하는데 주로 최선의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결정이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결정할 당시에는 내 안위, 주변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결정 피문에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런 아이러니를 무수히 만들어낸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여러 일반인들은 최전선에 투입되어 목숨을 걸고 적군에게 총을 겨눈다. 상대 적군으로 참여한 병사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명령에 따라 상대방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우리 병사가 쏜 총탄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죽음의 총탄이 된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팀장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영화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결국 핵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일 그리고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들고 나온 미국은 오펜하이머라는 물리학자를 중심에 세워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한 이후의 과정을 보여준다. 과거 회상을 섞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말해주는 식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미국 원자력 협회 소속인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장관 후보 청문회 과정을 보여주면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 영화 <오펜하이머> 장면 |
ⓒ 유니버설 픽쳐스 |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보다는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변화되는 감정을 따라가면서 감상하길 추천한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과 후, 꽤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서 많은 물리학자와 군인들을 설득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했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그는 압박을 이겨냈다.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직후 오펜하이머의 모습에선 잠시나마 안심이라는 감정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수많은 일본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오펜하이머의 마음에 죄책감이 일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경전의 말을 그 자신도 인용하듯,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사용 이후 정치인들이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서 꽤 불안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나쁜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 불안에 대한 표현이었으리라.
오펜하이머는 정치인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국가를 위해 최고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그는 매카시즘 광풍에 희생당하는 처지가 된다. 과거 공산당의 이론에 관심이 있었고, 동생을 비롯한 주변 사람이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결국 정치적으로 희생당하고 각종 권한을 박탈당한다.
그 당시 오펜하이머는 왜 그렇게 정치적인 논쟁거리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저항했을까. 오펜하이머 스스로 만들어낸 악마 같은 무기의 통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었을까.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신무기에 대한 정보와 권한을 가지길 원했고, 심지어 그 당시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만)을 만나 손에 피를 묻혔다는 말을 하며 그가 개발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전달하려 했다. 비록 인류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지만 그 자신은 그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식으로 만들어진 파워풀한 전기 영화
이런 감정의 큰 변화는 그의 개인 연애사에서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결혼 전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와 깊은 연애를 했다. 서로 무척 사랑했지만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진과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진은 이후 감정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고, 오펜하이머는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 영화 <오펜하이머> 장면 |
ⓒ 유니버설 픽쳐스 |
영화 <오펜하이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묵직하고 건조한 이야기의 시간 구조를 교차로 구성하여 영화적 흥미를 높인다. 특히나 오펜하이머의 반대편에 서서 안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 스트라우스의 청문회 장면과 서사는 흑백으로 처리된다. 다르게 보면 스트라우스의 서사와 오펜하이머의 서사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결국 두 사람의 간접적인 충돌과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에 오펜하이머의 주변부가 폭탄처럼 분열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번 영화에는 음악과 음향이 큰 역할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교차편집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영화음악이다. <오펜하이머>의 음악은 루드비히 고란슨 감독이 맡았다. 루드비히는 2019년 마블 영화 <블랙 팬서>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은 바 있으며, 이후 <테넷>, <베놈> 시리즈의 음악도 작업한 바 있다.
다른 무엇보다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다. 킬리언 머피의 필모 중 가장 좋은 연기가 아닐까 싶다. 그 외에 스트라우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레슬리 역의 맷 데이먼, 진역의 플로렌스 퓨, 캐서린 역의 에밀리 블런트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가 다 끝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자폭탄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 이후,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들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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