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도와의 악연, 한 번이 아니었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8. 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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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운행 시스템은 신뢰할 수 없지만 개인은 신뢰할 수 있는 나라

[김찬호 기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독일로 넘어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독일로 넘어오면서, 저는 쾰른에서부터 일정을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유레일 패스를 이용하고 있어서, 열차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앱을 통해 쾰른으로 향하는 노선을 검색해 봤습니다.

쾰른으로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의 환승이 필요했습니다. 어차피 따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니,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기 노선은 따로 좌석 예약비를 내야 합니다. 물론 일반 운임보다는 훨씬 싸지만요. 하지만 독일에서는 모든 노선에서 별도로 좌석을 예약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독일에 들어가고 나면 열차 탑승이 훨씬 편안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독일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는 기술 강국의 이미지 때문일까요. 왠지 독일 철도는 출발 시간을 1분도 틀리지 않고 움직일 것만 같았습니다.
 
 독일 고속열차
ⓒ Widerstand
하지만 그런 막연한 기대는 독일에 들어오자마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네덜란드 안에서 이동하는 첫 번째 기차는 아무 무리 없이 환승역에 도착했습니다. 두 번째 기차를 타고 독일로 향하는 국경을 넘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서자마자 열차는 20여 분을 정차했습니다.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독일어로만 진행하는 안내방송을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환승해야 할 뒤스부르크(Duisburg) 역에 도착한 것도 예정보다 20분 지연된 시각이었습니다. 원래 타려고 생각했던 열차는 물론 타지 못했죠. 다행히 기차는 자주 있는 편이었고, 부어스트 하나를 사 들고 다음 열차를 기다렸습니다.

뒤스부르크에서 쾰른으로 향하는 열차는 제 시간에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정거장인 뒤셀도르프 역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역시 독일어로 방송이 나오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내리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일단 열차의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결국 쾰른으로 향하는 다음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도 기차에서 내려, 다가오는 다음 차로 갈아탔습니다. 이럴 때는 자유롭게 기차를 탈 수 있는 패스권이 큰 도움이 됩니다. 다행히 이 기차는 제대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네 개의 기차를 탄 뒤에야 쾰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정보다 두 시간 늦은 도착이었습니다.
 
 쾰른 역에서 보이는 대성당
ⓒ Widerstand
쾰른 역에서는 나오자마자 거대한 쾰른 대성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숙소에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로, 일단 홀린 듯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거대한 성당의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기차역 앞에 위치한 거대한 성당. 이 성당의 모습만으로도, 오늘 겪은 불편을 다 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철도와의 악연은 그렇게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쾰른 대성당
ⓒ Widerstand
다음 날, 인근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역을 찾았습니다. 역에 도착하니 제가 타야 할 열차는 오늘도 20분 정도 늦어지고 있더군요. 안내판을 살펴보자니, 연착되지 않은 열차가 드물 정도였습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다시 한 번 쾰른 대성당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고 시간에 맞춰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열에 돌아와 안내판을 보니, 이제는 아예 역 전체의 안내판이 오류로 멈춰 있었습니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안내문만 있을 뿐, 어디에서도 열차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플랫폼만 열 개가 넘는 이 거대한 역에서, 내 열차가 몇 번 플랫폼에 들어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지도 않으니, 언제 어디서 내가 탈 기차가 들어오는지 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안내 데스크에 문의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십수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는 20여 분 동안 결국 안내판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쪽 플랫폼에 서 있다가, 들어오는 열차를 보고 뛰어가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원래 타려던 열차는 아니었지만 목적지가 같은 열차를 확인해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악명 높던 인도에서도 열차 플랫폼을 몰라 뛰어다녀야 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멈춰버린 전광판
ⓒ Widerstand
이런 경험이 특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철도공사인 도이체반(Deutsche Bahn)에 따르면, 독일 기차의 정시 도착률은 지난해 65.2%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열차 운행이 많아지는 여름에는 정시에 도착하는 열차의 비율이 60% 선까지 떨어집니다. 
독일 철도는 1994년부터 '경영 효율화를 위한 구조 개혁'에 나섰습니다. 원래 국가가 관리하던 철도청을, 도이체반이라는 공기업과 그 자회사로 분리시킨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철도를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은 실패해 도이체반의 주식은 여전히 100% 독일 연방정부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기관이 아니라, 독립된 기업의 형태로 지금까지 경영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도
ⓒ Widerstand
경영 효율화라는 이름 아래 수익이 낮은 노선은 민영화되거나 폐선되었습니다. 인력 감축도 이어졌죠.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철도의 요금 인상이나 폐선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직원 한 명 없는 무인역의 비율도 증가했습니다. 
독일은 유럽에서 철도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그러나 철도를 관리하는 주체는 인력을 감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이체반의 공기업화 직후부터 이어진 기차의 연착 문제는 지금까지도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적인 회사가 된 도이체반에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죠.
물론 철도를 공기업화하면서 이룬 성과도 있습니다. 화물 운송과 국제 진출에 집중한 도이체반은 영업이익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정시성의 문제 역시, 꼭 기업화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기반시설을 국가가 관리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손실도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독일의 시민들이 일상의 현장에서 마주하고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철도
ⓒ Widerstand
사실 독일 철도에서는 인상깊은 점이 또 한 가지 있었습니다. 철도 승강장에 개찰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도 뿐 아니라 지하철이나 트램도 전부 마찬가지였습니다. 표를 확인해야만 문이 열리는 개찰구를 독일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등급이 높은 고속열차에서는 대부분 검표원이 차 안에서 표를 확인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열차에서는 불시에 검표가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마저도 검표를 그리 자주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표를 구입하는 것까지도,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반드시 표를 확인해야만 문이 열리는 개찰구는 순간적으로 몰리는 다수의 인원을 처리하기는 불편합니다. 고장이 발생할 우려도 있죠.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피 경로도 만들기 어렵습니다. 독일 철도는 그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의무를 이행하는 개인을 신뢰하기로 한 것입니다.
 
 쾰른의 트램
ⓒ Widerstand
두 모습은 참 상반되게 느껴졌습니다. 열차는 결코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나라. 하지만 그 열차를 타기 위해, 굳이 개찰구를 통과할 필요는 없는 나라. 철도의 운행 시스템은 신뢰할 수 없지만, 철도를 탑승하는 개인은 신뢰할 수 있는 나라. 
어쩌면 그 틈새에서 독일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요. 독일 여행은 처음인지라, 철도라는 첫 인상이 어쩐지 깊게 남았습니다. 그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서라도, 독일에는 조금 더 머물러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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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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