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푸드, 꼭 ‘사람 식품’만큼 위생적이어야 할까? [멍멍냥냥]
8월 초엔 ‘네이처스로우’라는 업체에서 제조한 반려동물 사료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형) 항원이 확인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법에 명시된 멸균, 살균 등을 위한 공정을 지난 5월 25일부터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유사한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농식품부는 닭고기, 오리고기 등을 사용하는 반려동물용 사료 제조업체에 대해 멸균, 살균 공정 준수 여부 등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생이 문제라면 위생 기준을 강화하면 되는 거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다. 실제로 반려동물 산업은 반려동물을 인간처럼 대우하고 보살피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의 이면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반려동물의 사회적 지위’나 ‘반려동물 복지’에 관한 논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료 업계의 이해관계와도 연결된다. 당장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면, 반려동물 위생 기준 강화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우선 알아보자.
◇일부에서 사료 ‘위생 기준’ ‘검사 관리’ 미흡하다고 지적
현행 ‘사료의 미생물 관련 기준·규격’이 충분치 않다는 주장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광주광역시보건환경연구원 연구팀은 모든 사료에 미생물 기준을 적용했지만, 현행법은 ▲수분 14% 초과, 60% 이하 사료 ▲동물성 단백질류를 포함하지 않은 냉동사료에 대해서만 일반세균수와 대장균군 허용기준을 명시한다. 수분 함량이 14% 이하거나 60% 초과인 사료는 이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보환연 조사에선 대다수 제품(110개)이 수분함량 14% 초과, 60% 이하에 해당됐으나, 이 범위 밖의 제품(20개) 중에서도 1개가 일반세균수 기준을, 2개가 대장균군 기준을 초과했다. 또한, 애완동물용 배합사료나 혼합성 단미사료는 ‘D그룹 살모넬라균’만 불검출돼도 살모넬라균 법적 기준을 만족한다. 보환연 조사에선 D그룹이 검출되지 않았으나, C·S그룹은 검출됐다.
있는 법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동물 수의사 A씨는 “현행 사료법 위생기준뿐 아니라 사료 등록과정과 정부의 감시 모두가 느슨하다”며 “사료를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지도 않고, 사료의 일반세균수와 대장균군 검사는 현재로선 해썹(HACCP) 공장만 자체 매뉴얼로 시행하고 있어 일부 공장에선 아예 검사되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미 보조사료는 6개월에 1번 이상 유해물질, 성분규격, 사료 보증성분 관련 검사를 시행하도록 규정돼있지만, 실제로 검사를 시행했는지 감독하지 않을 때가 많아 검사하지 않는 업체가 다수”라고 말했다.
◇반려동물 사료, 가축용과 구분해 관리해야 한단 주장 有
이에 반려동물 사료를 가축용 사료와 구분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수의사회는 사료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현행 ‘사료관리법’ 등 국내 사료관리 체계는 양축용 사료 위주로 돼 있어, 반려동물용 사료의 관리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일본은 ‘반려동물 사료안전법’을 제정해 반려동물용 사료의 위생과 안전성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고 법 강화를 촉구했다. 미국은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FFDCA)에서 반려동물 사료는 사람 식품 위생 수준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반려동물이 소·돼지 등 가축보다 식중독에 취약하진 않다. 대동물 수의사 A씨는 “동물별로 특히 취약한 유해성분이나 식중독균이 다르긴 하지만, 반려동물이 태생적으로 식중독균 감염에 더 취약하진 않다”며 “가축도 사료 섭취 과정에서 납, 타르, 중금속 등 유해성분이나 살모넬라균, 병원성 대장균 등에 감염되면 설사, 기력저하, 탈수 등 소화기 증상이 발생하고, 사료를 통해 입으로 들어온 바이러스에 호흡기 질병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심할 경우 폐사로도 이어진다.
이 점을 고려하면, 사료의 위생 수준이 문제일 경우 가축용 사료의 위생이라고 예외가 돼선 안 된다. 그러나 대동물 수의사 A씨는 “농장동물용 사료든 반려동물용 사료든 사료 품질을 높이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하면 좋겠지만, 반려동물 사료의 위생 기준이라도 먼저 강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각 사료의 유통 방식에 그 이유가 있다. 농장은 사료를 공장이나 사료 회사에서 직접 공급받는 형태다. 이에 사료를 먹은 농장 동물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떤 회사의 사료인지 추적해 회사를 중지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 단계가 비교적 많은 반려동물용 사료는 이런 대처가 어렵다. A씨는 “반려동물용 사료는 워낙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되기 때문에 사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 발생 시, 사후 대처가 어려운 쪽부터라도 관리를 엄격히 해야 한단 것이다.
◇현행 기준대로 관리만 잘 하면 충분하단 의견도 有
앞서 말했듯이 ‘좋은 펫푸드’의 개념은 ‘무엇이 반려동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정의에 따라 갈린다. 우선, 인간의 보호 아래 안전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 반려동물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있다. 펫푸드의 위생 수준도 사람 식품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인식이 여기 속한다. 펫푸드 업계에선 이미 ‘휴먼그레이드’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등급의 식품으로 만든 펫푸드에 사용하는 단어다. 반대로, 덜 안전하거나 안락해도 동물 본연의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이 그들에겐 행복이라는 입장도 있다. 반려동물이 인간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야생성이 옅어진 건 맞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물이란 점에 주목한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도 반려동물에게 아무거나 먹여선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펫푸드에 꼭 인간 식품의 위생·품질 기준을 적용돼야 하는 건 아니며, 지금의 위생 기준을 잘 적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사람에게 적합한 조건이 동물에게 꼭 적합하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대 동물생명공학과 허선진 교수는 “동물의 행동은 사람만큼 많이 통제돼있지 않아, 맨발로 땅을 파는 등 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행동을 더 자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여러 미생물에 노출된다”며 “반려동물을 아끼는 마음에 사람 식품에 버금가는 펫푸드를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오히려 동물 개체들이 미생물에 취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효용 대비 비용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허선진 교수는 “사료 위생 수준을 인간 음식의 위생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사료 회사에선 이를 이유로 사료값을 올릴 수 있다”며 “반려동물에게 꼭 필요하지 않음에도 복지로 위장된 것에 보호자가 돈을 지불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위장된 동물복지’에 지출되는 시간적·금전적 비용을 줄이고, 남는 여유로 반려견을 산이든 들이든 자주 데리고 나가 뛰어놀게 해 주는 것이 동물 복지에 더 가깝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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