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헤르만 폰 카이저링의 '방랑하는 철학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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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길이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지름길이다." 헤르만 폰 카이저링이 세계 일주에 나선 1910년대, 유럽의 지식인 사이에선 그랜드 투어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를 둘러보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고 그들의 무수한 여행 기록도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 일주 여행기는 대부분 유럽인의 편협한 시선 속에서 바라보았던 이국적 풍경의 기록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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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길이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지름길이다." 헤르만 폰 카이저링이 세계 일주에 나선 1910년대, 유럽의 지식인 사이에선 그랜드 투어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를 둘러보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고 그들의 무수한 여행 기록도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 일주 여행기는 대부분 유럽인의 편협한 시선 속에서 바라보았던 이국적 풍경의 기록에 그쳤다. 반면, 스스로 철학과 지질학을 공부하고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 대해서도 이해가 높았던 카이저링은 여행 중의 방문지를 단순한 구경의 대상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철학적 사유의 에너지로 이용했다. 오늘 소개하는 부분은 카이저링이 여행 초반, 인도양으로 나가는 길목인 아라비아반도 서남단 아덴항에서 마주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외감을 담고 있다. 글자 수 1080자.
검은 대륙의 창조력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영원한 아프리카 정신에서 나오는 힘이다. 박물관에서 고릴라는 제 고향을 다시 찾은 듯하다. 얼룩말과 타조는 포근한 봄날의 풍경 속에 메마른 초원의 환상을 자아낸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은 자기가 끌려와 살고 있는 고장을 조국의 혼으로 채운다. 지금 그가 떠나온 고향에서는 백인이 흑인의 노래를 부르며 시원해한다. 이런 것을 보려고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아덴항에 상륙하지 않았다면 막연히 '아프리카'라는 곳이 어디까지 현실인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바위산의 풍경과 사람들, 드넓은 모래밭과 초가와 독수리, 단봉낙타와 그 등에 실린 짐꾸러미가 눈부시게 하나로 어울린다.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각 부분의 계조는 극히 맑게 생동한다. 확실하게 전체로서 울린다. 귀를 기울이는 곳마다 들린다. 거의 격렬하게 들린다. 너무나 완벽해 부분을 위한 자리와 각각의 독창성은 없다. 그 대신 모든 개성을 넘어선 감각을 즉시 드러낸다. 몹시 강렬하다. 전체의 통일성은 상투형이 아니다. 오히려 수준 높은 전형이다. 그리스 예술처럼 반복되는 것마다 리듬을 탄다.
벌거벗은 흑인은 당당하고 멋지다. 이곳에서 정말이지 조각은 무의미하다. 유럽인의 몸뚱이는 둔하다. 예술가는 몸에서 표현에 마땅한 부분만 추려내야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 예술가가 그토록 중요하다.
아프리카의 자연은 우리에게 예술 작품처럼 커다란 감흥을 준다. 자연만큼 훌륭하게 작업할 수 있는 조각가가 어디 있을까. 자연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인간 형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어렵다. 대부분 한참 멀다. 순수하게 예술적인 면에서나 작품이 암시하는 힘에서나 그 모델에도 크게 못 미친다.
유럽의 탐미주의자들은 최고의 예술만 중시한다. 나도 그렇다고 해야 할까? 예술가들은 영원하다고 하지만 우연히 작품을 내놓을 기회와 명성을 누릴 뿐이다. 조각가들은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때부터 수많은 세월 동안 몸짓만으로 모든 표현을 할 수 없어 그것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그 작품은 참신한 폭로가 된다.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 별로 없다. 시인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려면 낯선 감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헤르만 폰 카이저링, <방랑하는 철학자>, 홍문우 옮김, 파람북, 3만2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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