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관광 문 열려도 안 갔다…예전같지 않은 '유커 파워' 왜

신경진 2023. 8.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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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7일 태국 방콕을 찾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왕궁을 관람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해외여행객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에 앞서 지난 2월 중국이 단체관광을 허용했던 20개국 가운데 태국과 싱가포르, 스위스의 지난 6월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 방문 규모는 코로나19 이전 전성기와 비교할 때 16.5%~28.5%에 그쳤다. 지난 10일 중국 당국이 한국을 포함한 78개국의 단체관광 상품을 허용하자 국내에서 ‘유커의 귀환’으로 관광산업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2017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커 파워의 쇠퇴는 주요 해외여행 목적지 통계에서 확인된다. 동남아 관광 대국인 태국의 관광체육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중국인 관광객은 31만 1888명에 머물렀다. 지난 2019년 1월 189만여 명의 16.51%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6월 한 달 중국인 11만 3290명이 찾아 월간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2019년 8월 39만7070명의 28.53%에 그쳤다. 유럽 스위스의 경우 지난 6월 유커 3만3079명이 방문, 2018년 8월 19만여 명의 17.49% 수준을 기록했다.

김영옥 기자

지난 8월 10일 3차 단체관광 해제 78개국에 포함된 한국은 올 상반기 이미 18.31% 수준의 회복률을 보였다. 개별 자유 여행으로 지난 6월 16만8035명이 한국을 찾았다. 단체관광을 해제한 태국, 스위스보다 회복 수준이 도리어 높았다. 싱가포르는 지난달 7월 유커 방문이 23만명대까지 회복됐지만, 월평균 23만8636명이던 2016년 수준이다.

유커의 더딘 회복세는 중국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중국여유(관광)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출국 여행 빅데이터 보고’에 따르면 올해 1~6월 4037만명이 해외여행을 즐겼지만, 마카오 50.9%, 홍콩 26.7%를 차지하면서 순수 해외여행은 800여만명에 그쳤다.

단체여행 해제 효과도 미비했다. 상반기 단체관광이 금지됐던 일본(2위)·한국(4위)·미얀마(5위)가 상반기 최다 방문 5위권에 포함되면서다. 진종화 한국관광공사 중국지역센터장은 “2019년 중국 아웃바운드 관광객 1억5500만명과 비교할 때 올 상반기 유커 출국 수치는 처참한 수준”이라며 “스프링 효과는 예상되지만, 과거처럼 쇼핑이 메인이 되던 시절은 되돌아오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커의 귀환'이 어려운 원인으론 중국인의 소득 감소, 단체여행 퇴조 추세 등이 꼽힌다. 전가림 호서대 교수는 “전반적인 중국 경제의 부진으로 저축 성향이 높아졌고, 위안화 가치 절하 등 해외여행을 가로막는 부정적 요소가 늘고 있다”며 “반면 중국인 특수가 절실한 증권가와 지자체의 기대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유커의 쇼핑 파워도 줄었다. 홍콩여행발전국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쇼핑을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는 응답은 2017~19년 27%에서 2023년 5월 19%로 크게 줄었다.

지난 2월 8일 제1차 해외 단체관광 허용에 따라 태국을 향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대와 달리 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회복 속도가 늦어져 지난 6월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16.5% 회복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신화=연합뉴스


자유 여행을 지원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발달도 단체관광 부활에 부정적인 요인이다. 도현지 관광공사 상하이 지사장은 “2017년 한국 단체관광 금지 이후 중국 여행 시장은 개별 자유 여행과 가족 단위 위주로 재편됐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상하이의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크루즈 선사의 제주도 기항의 절반 정도는 확정이 아닌 검토 수준”이라며 “실제 방문 횟수와 탑승률 등은 아직 추산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홍콩여행발전국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쇼핑을 위해 홍콩을 방문한 중국 유커 비중이 2017~19년 27%에서 2023년 5월 19%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여행발전국 사이트 캡쳐

더딘 유커 회복세와 달리 과거의 '악습'은 되살아날 조짐이다. 이대범 하나투어 아이티씨 소장은 “유커를 송출하는 중국 아웃바운드 여행사가 벌써 물밑에서 유커 1인당 300위안(5만5000원)을 요구한다. 제주도 내 중국인 업체 위주로 쇼핑을 강제하는 마이너스 덤핑 관광을 준비 중”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의 물가는 높아지고, 유커의 구매력은 낮아진 상황에서 역효과를 우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진종화 센터장은 “중국인의 소비자 권익 의식이 높아지고, 당국의 감독이 강화되면서 중국내 관광지의 강제 쇼핑은 거의 사라졌다”며 “ 중국 당국과 함께 온·오프 관광 불편 신고센터를 확충해 불건전 업체의 등장을 초기부터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의 출입국 담당 공안국에 여권을 만들려는 시민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일 제3차 단체여행을 허용하는 78개국 명단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한편 중국 당국이 유커를 다시 '무기화'하려는 조짐도 있다. 국수주의 성향의 환구시보는 지난 16일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로 유커 숫자가 크게 줄었듯이 한국이 중국 유커를 받아들이려면 대중국 관계를 크게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앞서 중국은 자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캐나다를 단체관광 3차 해제국에서도 제외했다. 주캐나다 중국대사관은 “중국 정부는 해외 중국 국민 안전과 정당한 권익 보호를 매우 중시하며, 그들이 안전하고 우호적인 환경에서 여행하기를 희망한다”며 캐나다 정부를 압박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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