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영웅 정율성 기념공원" 논란…광주 추진에 보훈장관 반발

김준영, 전민구, 김하나 2023. 8.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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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태생으로 북한과 중국에서 혁명 음악 대부로 평가받는 정율성(1914~1976년, 본명 정부은)을 두고 여야가 충돌했다. 광주시(시장 강기정)가 동구 불로동에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역사공원’(878㎡ 규모) 조성을 추진하는 게 발단이 됐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22일 페이스북에 “‘중국 영웅’ 또는 ‘북한 영웅’인 정율성을 위한 기념 공원이라니,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이냐. 그렇게도 기념할 인물이 없느냐”며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 전면 철회되어야 마땅하다”는 글을 올렸다.

정율성. 사진 광주광역시 홈페이지


정율성이 ▶1939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현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고 ▶해방 후 북한에선 조선인민군 협주단장으로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작곡했으며 ▶이후엔 중국에 귀화해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는 이력을 열거하면서 한 말이다. 아울러 박 장관은 정율성이 1948년 2월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인민 경제계획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공로로 받은 상장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그러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페이스북에 “광주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투자한다”는 반박 글을 올렸다. 그는 “항일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다 중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라며 “그 아픔을 감싸고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고 썼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일대에 조성된 ‘정율성로’. 연합뉴스

또 강 시장은 “정율성 선생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함께 꼽은 인물”이라며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2014년 시 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 우호 상징으로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만든 정율성 선생”을 콕 집어 말한 것을 기념의 근거로 댔다. 앞서 중국은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때도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정율성 이름을 올렸다.

그러자 박 장관도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니. 돈이 되는 일이면 국가 정체성이고 뭐고 필요 없단 말이냐”며 “호남은 군산고 등 6·25 때 가장 많은 학도병을 배출한 학교가 있는 곳이다.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영웅이 많은데 하필 공산당 나팔수의 기념공원을 짓겠다는 거냐”고 썼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시 주석의 긍정 평가가 한국의 기념 인물 선정 기준이라도 되느냐. 사대주의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반박과 재반박으로 이어지는 양측 설전을 두고 학계에선 “차제에 국가가 기려야 할 독립운동의 기준을 명확히 할 시점이 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애당초 기념공원 사업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5월에 발표된 일인데,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뒤늦게 논란이 된 건 역사 인식이 전환기를 맞았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보수에서 진보 정부로 바뀐 문재인 정부 초반에도 약산 김원봉(1898∼1958년) 추서 논란을 두고 여야가 맞붙었다. 공교롭게도 율성(律成)이란 이름은 그가 1930년대 의열단에 있을 당시 단장이던 김원봉이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실제 박 장관의 기념사업 철회 주장엔 그런 인식이 잘 드러난다. 박 장관은 “정율성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며 “북한에서 6·25 전쟁 남침의 나팔을 불었던 공산군 응원 대장은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다”고 썼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항일운동을 했더라도 이후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했으면 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이냐”는 말도 그런 맥락이다.

2017년 12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대학교를 방문해 '한중 청년의 힘찬 악수, 함께 만드는 번영의 미래'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베이징대 강연회에는 교수와 교직원, 학생 300여 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반면 진보 진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남북이 분단된 이후의 행적보다는 독립운동 여부에 무게추를 뒀다. 강 시장도 이날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두 가지 색깔, ‘적과 나’로만 보인다”고 했다. 광주시는 이전부터 시내 곳곳에 ‘정율성로(路)’ 등을 만들기도 했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인 2017년 베이징대 강연에서 “광주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을 기념하는 ‘정율성로’가 있다”고 소개했다.

학계 의견은 분분하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국민이 보기에 정율성은 진영을 뛰어넘어 우리가 기려야 할 만큼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며 “컨센서스도 없이 굳이 세금으로 기리겠다는 건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독립운동의 업적 기준이 분단 이후 행적에 따라 달라지면 역사를 소급 적용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준영ㆍ전민구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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