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믿음 통한 치유, 의학 통한 치유

2023. 8. 23.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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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병을 치유하는 모습이다.

4개 복음서에 총 37개의 기적이 기록돼 있는데 그중에서 70% 넘는 26개가 치유의 기적이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질병 치유에 있어 의학과 종교의 역할이 구분되기 시작했는데 현대 의학은 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해줬다.

그럼에도 의학적 치료가 예수께서 보여준 즉각적이고도 완벽한 치유에 비할 수는 없고 아직 불완전한 부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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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병을 치유하는 모습이다. 4개 복음서에 총 37개의 기적이 기록돼 있는데 그중에서 70% 넘는 26개가 치유의 기적이었다.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예수께서 고친 병들을 한 번 정리해 본 적이 있다. 귀신 들림이 7회, 소경이 4회, 문둥병이 2회, 중풍이 2회 등장한다. 종양 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현대의 가장 절박한 질병인 암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점이 흥미롭다. 고대에는 암이 발생하기 이전에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정신질환이나 만성질환, 감염병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학이 실질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던 고대에는 종교와 의학이 불가분의 관계였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질병 치유에 있어 의학과 종교의 역할이 구분되기 시작했는데 현대 의학은 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해줬다. 문둥병이라고 불렸던 한센병은 이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고, 소경이라고 표현한 시각 장애도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많은 경우 치료가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의학적 치료가 예수께서 보여준 즉각적이고도 완벽한 치유에 비할 수는 없고 아직 불완전한 부분들이 많다. 여전히 여러 난치병이 있고, 치료 과정에서 합병증과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환자들은 다양한 종교가 있다. 나는 의사로서 환자들의 다양한 종교를 존중하고, 믿음이 치유의 힘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려고 노력한다. 종교적 신념은 개인의 내면을 지탱하고 위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많은 환자가 의학이 제공하는 신체의 치유와 종교적으로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치유를 조화시킴으로써 여러 긍정적 효과를 얻는다.

물론 가끔은 도전적 상황도 생긴다. 예를 들면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다. 의사 역할은 신념의 근거를 논박하기보다는 이런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의학적으로 안전한 대안이 있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는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법적 분쟁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항암치료나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의학적 치료가 종교적 믿음과 절대 상충하지 않으며, 신앙과 현대 의학이 조화를 이룰 때 더 나은 치유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오늘은 외래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10대 아이인데 외부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재발하고 전이까지 된 상태로 나를 찾아왔다. 믿음이 충만한 가족이었는데 부모님은 질병의 고난에 대해 혼란스러워했지만 아이는 기특할 정도로 성실하고 씩씩했다. 이미 재발된 상태로 찾아온 터라 상당히 강한 치료를 계획해야 했다. 그런데도 완치를 시킬 수 있을지, 아이가 치료 부작용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음식부터 일상생활까지 많은 제약이 생기게 된다. 아이는 나에게 주일에 교회에 나갈 수 있는지 물었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은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신앙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용기를 잘 알았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도 된다고 했다. 그 대신 그냥 나가지 말고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라고 했다. 다만 찬양대 활동은 잠시 쉬기로 했다.

아이는 계획했던 치료를 성실히 잘 따랐고 힘든 치료를 놀랍게도 잘 이겨냈다. 재발하고 전이가 됐던 병변도 모두 깨끗하게 치료가 됐다. 종교를 통한 치유는 이처럼 의학을 통한 치유와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아이는 이제 모든 치료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는 찬양대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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