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촌철生인] 투표로 멍청이들을 내보내자
심판하자는 것… 제대로 된
환경정책은 진심에서 나온다
미국에서도 ‘asshole’이라는 단어는 흔히 쓰는 말이 아닐 것이다. 어리석거나 멍청이라는 말보다 더 모욕적인 비속어.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기업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적 비난을 받는 대신 공감과 감탄을 받은 글로벌 기업이 있다. 2020년 가을의 일이다.
‘Vote the assholes out.’ 얌전하게 번역하면 ‘투표로 멍청이들을 내보내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짧은 문구. 이것은 미국의 한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새로 출시한 반바지를 구입한 고객들이 옷 안쪽에 달린 태그에서 발견한 문구였다. SNS에 이 옷의 태그 사진이 올라오면서 이것이 진짜냐 아니냐를 두고 화제가 됐다. 오래지 않아 진위가 밝혀졌다. ‘이거 실화임.’ 더구나 이 문장은 해당 브랜드의 설립자가 ‘지구의 날’에 고객들에게 공개한 서한에서 이미 썼던 말. 그러니까 태그에 적힌 이 한 줄의 카피는 기업이 고객들에게 던진 메시지였던 것이다.
문제의 태그가 달린 옷은 그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정판으로 판매됐다. 기후위기를 외면하고 제대로 된 환경 정책을 펼치지 않는 정치인들을 투표로 심판하자는 것. 창립 이후 줄곧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이라고 말하는 기업이므로 그들이 말하는 ‘asshole’이 어떤 자들인지에 대해서는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이보다 십년 전쯤에 이런 광고도 했다. 자사의 재킷 사진 위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광고 역사상 ‘우리가 1등이 아니라 2등’이라고 말하는 브랜드는 있었어도 자사 제품을 사지 말라고 말하는 브랜드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11월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둔 시점. 자사 제품이 유기농 원단이거나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지더라도 생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대량의 물을 사용하게 되므로 구매를 줄이라는 메시지였다. 대신 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망가진 제품을 수선해주겠노라고.
기업과 브랜드가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거침없이 자신의 세계관과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진심 말이다. 1985년부터 매출의 1%를 자연환경을 위해 내놓았던 이 기업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창립자와 가족이 보유한 4조원 규모의 회사 지분을 기업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과 비영리 단체에 모두 넘겼다.
지금 우리는 현생누대 신생대 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에 살고 있다. 홀로세는 46억년 전에 탄생한 지구가 장구한 역사를 거쳐 약 1만1700년 전에 도달한 ‘완전히 새로운’ 시대다. 홀로세가 되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인류의 문명이 시작됐다. 과학자들은 이제 지구가 홀로세를 끝내고 ‘인류세’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인간 활동에 의해 지구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됐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인류세’라는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기후변화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되레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선다.
화성은 됐고, 지구에 진심인 회사. 모두가 눈치챘겠지만 이본 쉬나드가 창립한 파타고니아는 지금 ‘대한민국 강하천 심폐 소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강하천에 설치된 보를 철거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홍수를 줄이고 수질 개선을 할 수 있다는 201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진행한 강 복원의 경제적 효과 연구를 인용해 놓았다. 우리나라 강하천에는 3만3914개의 보가 설치돼 있고, 환경단체에 화답해 정부 기관은 2025년까지 이 중 약 100개의 장기 미사용 농업용 보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와는 별개로 최근 환경부는 4대강의 모든 보를 존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범국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며 후속 참여자를 지목하고 SNS에 올리는 ‘바이바이 플라스틱’ 캠페인을 열심히 진행하고 있다.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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