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얼굴 없는 가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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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웬만한 가게에는 주문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무인정보단말기, 일명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어서다.
'여기에는 인사를 건넬 사람이 없다.' 이런 가게들은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들고 이 사회를 더 각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가게는 동네 사람들을 연결하는 곳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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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웬만한 가게에는 주문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무인정보단말기, 일명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어서다. 식당에선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손님이 테이블 위 패드에 주문을 입력하는 곳이 늘고 있다. 서빙로봇도 도입 중이다. 마트에서는 셀프계산대에서 주로 물건값을 치른다. 키오스크는 코로나19 기간 비대면 문화 확산 속에 빠르게 보급됐다. 2021년 공공 분야(행정, 은행, 병원 등)와 민간 분야(마트, 식당, 영화관 등)에 도입된 키오스크가 21만대라고 추정한 통계치가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지난해 기준으로 키오스크 수를 약 45만대로 추산했다. 1년 사이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전국 대형마트 80여곳에는 500여대의 셀프계산대가 운영 중이다. 밤에 사람이 없는 편의점은 3300곳이 넘는다. 갈수록 ‘얼굴 없는 사회’에 가까워지고 있다. 물건을 팔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무인 단말기는 효율적이다. 우선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사람을 쓰지 않으니 업무를 가르치거나 관리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하지만 단말기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도 많고 사용에 서툰 일반인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현격히 줄인다. 만남의 시작인 인사만 봐도 그렇다. 내가 자란 고향 사람들은 이렇게 인사했다. “밥 무씹니꺼(식사하셨어요)?” 끼니를 제대로 먹기 어렵던 시절에 유래했을 것이다. 가게에 갈 때도, 집을 방문할 때도, 길에서도 그렇게 인사했다. 다른 사람이 배를 곯지 않았는지 묻는 말이다. 이웃에 대한 정이 녹아 있는 인사다.
익명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그나마 가게가 붐비고 대기 줄이 길어지면서 차츰 이 인사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은 인사를 하고 싶어도 인사를 할 대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영화관, 카페, 식당, 상점 등에서 무인화가 급속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람과 눈을 맞출 필요도 없고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 얼굴 없는 가게에 들어가기 전 잠시 멈칫한다. ‘여기에는 인사를 건넬 사람이 없다.’ 이런 가게들은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들고 이 사회를 더 각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 발달에 따른 무인화·자동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인화는 우리 삶을 메마르게 할 수 있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으면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연결 고리를 갖기 어려워진다. 무인화와 자동화가 진전될수록 사회 구성원 간 공동체 의식은 더 희박해질 것이다.
인간적인 유대감은 사회 통제 장치로도 기능한다. 콜센터 통화연결음으로 “당신과 통화할 상담원은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자주 들어가는 것도 이런 유대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아무나 위협하고 가해하는 일은 얼굴 없는 사회에서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근래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강력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범죄였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의 연대 의식이 낮아지면 더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
가게는 지역 안에 자리한다. 어떤 가게는 동네 사람들을 연결하는 곳이 될 수 있다. 주인이라면 방문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기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다정한 가게, 활기찬 상점, 친절한 곳…. 어떤 가게는 손님이 들어서면 점원들이 다 같이 손님을 돌아보면서 “안녕하세요? ○○입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어떤 식당은 주인이 직접 손님들을 응대하면서 음식 재료를 설명하고 음식을 맛본 자기 경험을 나눈다. 이런 가게도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가게 문을 더 기쁘게 열 것이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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