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의 교훈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가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폐막했다. 다행히 마지막에 중앙정부가 나섰지만, 너무 많은 문제점을 남겨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은 채 남 탓만 해댄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울올림픽, 월드컵, 평창겨울올림픽 등 굵직한 글로벌 대회를 잘 치러 국제적 위상을 올린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들 대회는 모두 정부, 기업, 그리고 전 국민이 성공을 기원하며 혼연일체가 되어 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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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민낯 보여준 잼버리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것이 패착
현장지휘 빛났던 고성 대회 대조
오늘의 실패 경험으로 축적되길
」
이번 잼버리 대회는 달랐다. 개막이 임박해서야 겨우 국민이 알았을 정도로 문재인 정부 5년간의 준비는 태부족이었다. 윤석열 정부도 1년여 시간이 있었지만 준비를 위해 올인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야영지는 물웅덩이가 되었고 화장실, 샤워실, 급수대에 대한 참가자의 불만은 폭발했다.
이번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은 컨트롤타워가 안 보인 것이다. 5년 전 제정된 ‘새만금 세계잼버리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정부지원위원장으로 하고, 실무는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맡았다. 지난 1년여 동안은 폐지를 앞둔 여가부의 장관과 전북 국회의원이 공동조직위원장이었고, 전북지사가 집행위원장으로 실무를 주도했다. 여기에 올해 2월에는 탄핵 논의에 휩싸였던 행안부 장관, 문체부 장관, 그리고 뒤늦게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가 공동위원장으로 추가되었다. 누가 업무를 총괄하는지, 매사에 누가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불분명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열린 강원 고성 세계잼버리는 성공적이었다. 새만금 잼버리 총예산의 10분의 1 정도밖에 투입되지 않았으나 김석원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당시 쌍용그룹 회장)가 주도하여 대회를 준비·운영했고 공동조직위원장은 강원지사였다. 김 총재는 대회 기간 내내 현장을 지키며 모든 스카우트 대원과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식사를 했다. 또한 수많은 쌍용그룹 임직원들이 현장에서 묵묵히 자원봉사를 했다. 현장 전문가 중심의 컨트롤타워가 한국 최초로 개최한 세계잼버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2023년 새만금 잼버리 담당자들이 1991년 고성 잼버리 자료를 확인했는지 궁금하다. 당시도 강풍과 폭우로 전체 텐트의 3분의 1이 무너지고 이동식 화장실에 오물이 넘쳤으며 평년보다 2~3도 낮은 이상저온 현상까지 겹쳤지만 슬기롭게 잘 대응했다. 담당 공무원들이 고성 잼버리 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무사안일이고, 살펴보고도 무시했으면 무능 또는 무책임이다.
그리고 2015년 일본 카라라하마 잼버리는 8월과 간척지라는 새만금과 비슷한 시기, 유사한 조건에서 개최되어 성공적으로 끝났다. 참고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핵심 정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위원회가 카라라하마 잼버리의 성공 경험을 활용했다는 말은 못 들었다.
나는 이번 불상사를 보며 고 임원택 서울대 명예교수를 떠올렸다. 임 교수의 지론에 따르면 한 국가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GDP는 전통적 생산요소인 자본과 노동뿐 아니라 한 나라가 보유한 ‘총체적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한 나라의 총체적 능력은 지력(智力)과 윤리력(倫理力)의 총합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 국가에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물이다.
축적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은 인도에도 거의 사라진 불교와 중국에서 거의 잊혀진 유교가 일본 정신으로 융합되어 근대화의 기초가 되었다. 이를 도식화하면 A+B+C+…의 총합적 사고방식이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유교를 봉건사회의 유산으로 부정하고 한자(漢字)는 우리나라의 문자가 아니라 외래어라며 없애려고 했다. 즉, A→B →C→…의 양자택일적 사고방식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제도와 문화를 기존 불교와 유교의 총합에 더하여 흡수했다. 나는 과거 일본이 한국보다 근대화에 앞섰던 것은 바로 총합적 방식이 양자택일적 방식을 이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려면 축적의 극대화 전략밖에 없다.
일본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지만, 성공은 뺄셈이 아니라 덧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 것이건 남의 것이건 어제의 성공을 잘 배우고 오늘의 실패를 내일에 살려 나가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에서 계승할 것까지 ‘빼기’를 하다 보니 컨트롤타워 없이 새만금 잼버리를 졸속으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정치권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 실무를 맡은 공무원은 ‘프로정신’을 갖고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디테일을 확실히 챙기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27년 8월 서울에서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이 100만 명 이상 참가하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열린다. 새만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다만 앞으로는 수행 능력이나 효과에 견줘 국제 행사가 너무 많지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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