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약을 쳐야 할까요?
8년 전 내 손으로 심은 버드나무가 이젠 양손을 모아야 할 정도로 굵어졌다. 버드나무는 잎과 가지가 부드러워 바구니 등 공예품으로 만들기에 좋다. 생존력이 뛰어나 자른 가지를 땅에만 꽂아도 뿌리를 잘 내린다. 하지만 약점도 있어서 습도가 높은 여름철엔 잎과 줄기에 애벌레가 많이 낀다. 일부 잎은 거의 잎맥만 남는 수준이 되고, 균까지 번지면 초록색 잎이 거뭇하게 변색한다.
어제는 우리 집 버드나무의 이 참담한 꼴을 보다 못해 남편이 한낮에 땀을 뻘뻘 흘리며 병든 가지를 대대적으로 잘라냈다. 그리곤 약을 빨리 쳐야 할 것 같다고 걱정한다.
도시의 나무들은 여름철 알게 모르게 살충·살균제 세례를 받는다. 그런데 약을 치는 전문가들은 대강의 진실을 안다. 나무를 살리려는 의도보다 사람들이 벌레를 무서워하고, 징그러워하기 때문이다. 식물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그들의 생과 사는 병충해보다 가뭄이나 폭우, 거센 바람 등에 의해 더 위협을 더 받는다.
식물과 벌레는 때론 죽음의 문턱까지도 갈 수 있지만 실제론 공생 관계일 때가 많다. 잎을 엄청나게 갉아먹는 애벌레는 훗날 나방이나 나비가 되어 꽃의 수분을 도와준다. 균도 마찬가지다. 식물을 숙주로 영양분을 갈취하기도 하지만 때론 질소를 공급해주는 일도 한다. 게다가 식물 또한 무작정 벌레를 그대로 두진 않는다. 잎에서 화학물질을 배출해 벌레들의 생식을 막거나 식욕을 잃게 한다.
아직껏 나는 정원생활을 하면서 이 약이라는 걸 쳐본 적이 없다. 나름의 방식으로 식물과 곤충은 서로를 방어하며 균형을 맞춰 살아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심었지만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와 균형이 나의 작은 정원에도 분명히 있다. 나 역시 벌레가 싫다. 하지만 조금만 너그럽게 이 자연의 조율과 균형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도 필요하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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